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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뿌리 깊은 한국사 인강 내용 총 정리

저작시기 2019.04 |등록일 2019.09.10 | 최종수정일 2019.09.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대)뿌리 깊은 한국사 인강 내용 깔끔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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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1) 신라의 건국과 성장
신라는 진한의 12개 성읍국가 가운데 하나, 마한은 54개 성읍 국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하나가 백제, 박혁거세- 석탈해,
박혁거세 거서간-차차웅-이사금(임금)-마립간-왕, 내물=나밀=나물마립간
4세기 나물마립간 때부터 중앙집권귀족국가로서의 시작(김씨의 왕위 독점 세습)
석씨는 왕족에서 제외되고 박씨는 왕비의 성으로 남음, 신라 하대에 박씨 왕이 다시 등장
신라는 눌지마립간(417~458) 때에 왕위의 부자상속제를 확립하였다. 신라가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지증왕과 법흥왕 때에 이르러서였다.

2-(1) 신라의 발전
신라’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한다' 는 뜻이었다. (德業日新 罔羅四方) - 덕업일신 망라사방
신라는 지증왕 때에 산업의 발전이 있었다. 우경이 시작되고, 수리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생산력의 발달)
* 이사부의 성씨는 김씨(김이사부, 나물마립간의 4대손, 삼국유사에서는 박씨로 기록, 논란이 있음)
* 지증왕 때 순장 폐지
신라는 지증왕의 개혁을 거친 뒤의 법흥왕에 의해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서의 통치체제를 완성하였다. 법흥왕 7년(520) 율령을 반포하였다. 법흥왕 23년(535)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세웠다.
독자적 연호의 사용은 대외적으로 중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법흥왕 14년(527)~22년(535) 경에 불교가 공인되었다. - 이차돈의 순교(하얀 피가 꽃이 됨)
* 이차돈의 성씨는 박씨(박이차돈)
불교의 공인은 국가의 통일을 위한 사상적 뒷받침이 되었다. 신라의 비약적 발전을 추진한 것은 진흥왕(540~576) 이었다. 진흥왕은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하여 신라 왕실의 권위를 높였다.
* 거칠부의 성씨는 김씨(김거칠부, 나물마립간의 5대손)
‘개국(開國)’이라는 독자적 연호도 사용하였다. 불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황룡사를 창건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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