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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과 풍수지리

저작시기 2016.06 | 등록일 2018.12.10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서론
1) 도선의 생애

2.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과 도선설화
1) 도선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과 연구 성과
2) 도선과 도선설화의 정치적 활용
3) 영암지역과 왕건의 관계

3. 결론
1) 맺음말
2)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선은 상당히 어지러운 시기인 통일 신라 말에 태어나 나름의 사상과 업적을 이룬 인물로 평가받는다. 도선의 호는 옥룡자(玉龍子) 요공국사(了空國師)·선각국사(先覺國師)이며 성은 김(金), 출생지는 전남 영암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도선의 호 중에서 국사(國師)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는 후대 고려 왕들이 오랜 기간 걸쳐 추증하였기 때문이다. 도선은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스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경을 공부하다 4년 뒤 846년(문성왕 8년) 신승(神僧)으로 추앙받았다. 또한 당시 불교계에서 새로운 종파로 등장한 선종의 구산선문(九山禪門)중 하나인 동리선문(桐裏禪門)의 혜철(惠徹)에게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가르침을 받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때 후학들이 매우 많이 몰려왔으며 평소 도선을 존경하던 현강왕이 궁으로 데려와 머물기를 바랐으나 도선은 옥룡사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였다. 도선은 혜철의 가르침을 받아 선승(禪僧)의 길을 걸었지만 그는 사실상 풍수지리의 대가로 더욱 유명했다. 그러나 그를 국사의 위치에까지 올려준 풍수지리를 누구에게서 언제 배웠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후 도선은 898년(효공왕 2년)에 72세로 입적하였으며 사후 효공왕 때 요공국사(了空國師), 고려 현종 때 대선사(大禪師), 숙종 때 왕사(王師), 인종 때 선각국사(先覺國師)의 시호를 내렸으며 의종은 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도선은 생전에서보다 사후 대접을 더 잘 받았다. 도선은 자신의 업적이나 지위에 걸맞지 않게 생애가 명확하지 않은 설화와 전설로 덮여있는 신기한 인물이다. 국사의 위치까지 올라갔으나 그의 생애는 뚜렷하지 않았고 오히려 후대에도 설화를 기반으로 해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였을 정도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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