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춘추전국시대의 국가와 사회

저작시기 2015.04 |등록일 2018.06.1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I. 춘추열국의 구조와 정치

Ⅱ. 춘추 중기이후의 제변동
1. 공실(公室)의 쇠퇴와 세족(世族)투쟁
2. 현의 출현과 씨족제질서의 해체

Ⅲ. 전국 국가의 형성과 그 과제

Ⅳ. 변법과 제민지배

본문내용

은대(殷代)부터 춘추기까지의 중국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읍(邑)이었다. 일반적인 견해로 읍의 자형(字形)은 성벽내에 사람이 집거(集居)하는 모습으로 해석되지만 모든 읍에 대해 견고한 성벽을 견상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방어시설만을 갖춘 소규모 취락에서부터 항토(夯土)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형태의 발달된 대취락(大聚落)이나 심지어 왕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집주(集注)하는 곳은 모두가 읍이었다.
이런 읍들이 춘추 중기를 분기로 하여 권력의 집중화 및 지배관철도의 심화과정 속에서 점차 그의 독립성을 상실하여 중앙에 예속되면서 결국 전국시대의 이른바 영토국가체제하에 중앙에 직할된 현(縣)단위로 재편되었다.
춘추기까지의 기본적 사회구성단위가 읍이었다고 하는데 고대문헌사 <좌전(左傳)> 등의 고문헌에 보이는 읍은 대체로 3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제후가 거주하는 중심적 읍은 3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제후가 거주하는 중심적 읍인 국, 국 이외는 중요 읍인 도(都), 그리고 국도 이외에 단지 읍으로 지칭되거나 또는 비(鄙)라 일컬어지는 일반읍이 그것이다.
춘추 중기 이전까지의 국가구조와 사회조직은 이와 같은 상하의 읍 사이의 지배종속관계와 각 단계의 읍 내부에서의 씨족적 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열국의 외면적인 전체구도를 조감해 보면, 거기에서 확연히 부각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국(國)과 야(野)의 엄격한 구분이다. 당시의 사회구조를 이른바 국야제(國野制) 또는 향수제(鄕遂制)라는 식의 이중체제(二重體制)로 규정하는 것은 그런 구분이 단순한 도시와 농촌의 구분과는 유(類)를 달리함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국(國) : 본래 서주 초 점령, 정복한 각 지역의 중심적 구읍의 자리에 주실로부터 파견된 제후 및 그 일족이 새롭게 성벽을 축조하여 건설한 신읍, 당시의 중심적 성읍의 적지는 하천 주변의 구릉지대로 한정
*야(野) : 국을 둘러싼 성곽을 대체적인 경계로 하여 그 밖에 펼쳐지는 광대한 원야흔한 비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원야의 여기저기에 점점이 존재하는 소취락이 이른바 비읍이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