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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식문화)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공복제도에 대해 설명하시오. (각 시대의 공복제도 및 공복의 품목, 공복의 변천, 그 의미를 설명할 것)

저작시기 2018.01 |등록일 2018.01.23 | 최종수정일 2019.04.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900원

목차

Ⅰ. 서론

Ⅱ. 삼국의 공복제도
Ⅲ. 고려의 공복제도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삼국의 복식은 북방계 호복으로 중국복식의 영향을 받아 삼국이 서로 관련되어 고유의 복식문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통된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공복의 기능은 오늘날과 같이 공식적으로 국가관리임을 나타내는 기본 정복이다. 관리들은 일반실무적인 사무를 볼 때나 조회, 궁중의 상제례 때를 제외한 경우에 공복을 착용해야 했다. 관리들이 외국이 파견될 때도 공무집행 시에는 공복을 입었다. 벽화와 기록들의 증거를 종합해 본다면, 이 시기의 공복은 관, 포, 허리띠, 홀, 신발 등인 것을 알 수 있다. 관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나라 모두 비단으로 만들어 입었고, 신분과 관직에 따라 색과 장식이 달랐다.

Ⅱ. 삼국의 공복제도

고구려(B.C 37~ A.C 688)에서는 푸른색이 대신(大臣)급이 쓰는 관이고, 그 다음 급 관리는 붉은 색 관을 쓰고 금과 은 등으로 여러 장식을 더했다. 고구려에서는 푸른색이 대신 급이 쓰는 관이고, 그 다음 급 관리는 붉은 색 관을 쓰고 금과 은 등으로 여러 장식을 더했다. 《신당서新唐書》기록을 보면, 왕과 대신이 다른 종류의 혁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왕은 금구(金鉤)가 붙은 혁대와 대신(大臣)은 백위대(白韋帶) 혁대를 띠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구당서 舊唐書》에서도 왕이 소피대(백색의 혁대)를 띠었다는 기록과 고이왕대의 공복제도에서 품계에 따라서 색을 달리 착용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피혁대와 과대를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급 관리들의 관에서만 신분, 관직의 높고 낮음을 나태나는 표식을 했기 때문에 하급 관리의 관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는 거의 표시하지 않았다.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에서도 어떤 관복에 쓰는 관이라는 것은 표기되어 있지 않고 대신이 푸른색 라관을 쓰고, 다음 급이 붉은색 라관을 쓴다고만 적혀 있으므로 이 관들이 어떤 관복차림 때 정확히 쓰는 관인지 알 수는 없다.

참고 자료

김보광. 고려전기 公服制의 정비 과정에 대한 연구.2016
역사학연구소 저. 바로 보는 우리 역사. 서해문집. 2004
조법종. 이야기 한국고대사. 청아출판사. 2007
정성희. 고려왕조사 이야기. 청아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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