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발해사의 귀속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16.04 |등록일 2017.10.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700원

소개글

오늘날 발해사를 당연히 '한국인의 역사'라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고찰해 본 레포트입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정체성과 그 시기에 발해 및 다른 국가들이 발해를 어떤 시각에서 보았는지를 바탕으로 이를 찾아보았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대조영의 출자
Ⅲ. 발해인의 귀속의식
Ⅳ. 신라의 발해에 대한 인식
Ⅴ. 현대 한국, 중국, 러시아의 인식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냉전이 끝나고 약 20년이 흘렀다. 소련은 붕괴했고 그 자리에 러시아가 세워졌다. 그 외에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받아들였고, 그 중에서도 중국은 현재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 성장에 발맞춰 중국과의 무역을 확대해 나갔고 현재에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능가할 정도이다. 그 말은 곧, 중국이 한국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막대해졌다는 것이고 한국은 어느 정도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지만, 한국과 중국은 특히 역사적인 문제에서 여러 갈등을 겪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위해 여러 정책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중국 지역 내에 포함되는 그 모든 역사를 중국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 일환에서 중국은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한국인의 역사라고 생각해 온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사실 고구려는 분명히 한국의 역사라 표현하면서도, 발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한국의 역사라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1970년대가 넘어서야 발해에 대해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뿐, 그 이전에는 발해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에게 발해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이 ‘우리의 역사’라고 말할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를 편입시키려는 그 시도와 맞춰 한국도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의 역사임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해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로 귀속시키는 그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에 대답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발해는 지리적으로 중국의 영토와 더 가깝다. 따라서 위치로만 보면, 중국의 역사라고 표현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발해를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참고 자료

구난희, 2007, 『새롭게 본 발해사』, 고구려연구재단
전덕재, 2015 「8세기 신라의 대일외교와 동아시아 인식」 『일본학연구』 제44집,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송기호, 1988 「발해에 대한 신라의 양면적 인식과 그 배경」 『한국사론』 제17집,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송기호, 1989 「東아시아 國際關係 속의 渤海와 新羅」 『한국사 시민강좌』 제5집, 일조각
송기호, 1991 「大祚榮의 出自와 발해의 건국 과정」 『아시아문화』 제7호,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김정복, 2004 「渤海의 건국과정에 대한 재고찰」 『한국고대사연구』 제34권, 한국고대사학회
김기흥, 2011 「발해 건국집단의 역사적 정체성」 『역사학보』, 제210집, 역사학회
노태돈, 2003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사연구』 122, 한국사연구회
신선혜, 2008 「발해의 귀속문제에 대한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문제점」 『사총』 제66집,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