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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전투의 개관과 평가

저작시기 2016.05 |등록일 2017.09.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6.25전쟁 당시 지평리전투의 개관가 평가에 대한 상세한내용과 교훈및느낀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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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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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평리 전투란, 6·25 전쟁에 참여한 중공군이 1951년 2월 3번째의 공격을 개시하여 국군과 UN의 전선을 밀고 있을 때, 미군과 프랑스군의 연합부대가 지평리에서 중공군을 섬멸하여 기세를 꺾어 놓은 전투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지평리 전투의 개관에 대해 설명하겠다.
6.25전쟁이 한창인 1951년 2월,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미군 제8군 사령관이던 ‘Ridgeway’ 장군은 중공군이 뚫고 나오려는 돌파구의 정면에 있는 지평리 일대를 사수하여 공세를 막아내기로 결심하였다. 그 이유로는, 지평리 마을의 언저리에는 높이가 400m에 이르는 8개 정도의 고지들이 둘러쌓여 있어서 사주 방어진지를 적절하게 편성하기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군 23연대와 프랑스대대가 맡고 있던 지평리 일대는 최초에 아군전선의 후방에 있었다. 그러나 2월 11일 밤,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전선이 원주까지 내려오면서, 미군 10군단이 최북단 돌출부가 되었고 연이어 중공군 예하 5개 사단에게 포위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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