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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소설 「객지」에 드러나는 탈식민주의

저작시기 2015.06 |등록일 2017.08.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Ⅰ. 서론
1) 연구 방향
2) 탈식민주의 연구

Ⅱ. 황석영의 생애
1) 황석영의 삶
2) 「객지」에서 드러나는 황석영의 삶

Ⅲ. 황석영의 소설 「객지」
1) 「객지」 당시의 상황
2) 타자에 대한 관심

Ⅳ. 황석영 작품에 녹아있는 탈식민주의
1) 탈식민주의
2) 황석영 문학의 탈식민성
3) 「객지」 속 탈식민주의
4) 동혁의 의미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1)연구 방향
황석영(黃晳暎. 1943~ )은 1962년 「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등단한 이래 최근에 발표한 『바리데기』(2007), 『개밥바라기별』(2008), 『여울물 소리』(2012)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선보이며 문학사에 큰 획을 그어가는 작가이다. 기존의 황석영 문학의 작품연구는 리얼리즘을 중심으로 많이 연구되거나, 낭만주의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는 경향, 『손님』(2001), 『바리데기』(2007)에서 나타나는 샤머니즘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본고에서는 이와 달리, 최근에 화두가 된 탈식민주의에 근거하여 황석영의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탈식민주의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다.

2)탈식민주의 연구
황석영의 작품을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로 살펴보는 연구는 김미영(2004) 김미영, 「황석영의 『심청』과 19세기 동아시아」, 『역사비평』, 2004년 여름.
과 고인환(2005) 고인환, 「황석영의 손님 연구,」 『한국학논집』 39집,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2005년 12월.
등의 소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의견이다. 탈식민주의는 간단히 말해 제국주의 시대 이후, 지역적인 식민지는 벗어났지만 이념적인 식민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본고에서는 한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해방되었지만, 해방된 겉면 아래에는 여전히 식민 상태로 예속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광복 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정치 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서구에서 전해진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한국이 새로운 식민주의, 즉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왔고, 세태를 관찰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작가 황석영의 작품에 탈식민성이 드러난다는 것에 착안하여, 그의 작품에서는 신식민주의를 극복하려는 탈식민주의가 나타나 있다고 보고, 이를 기준으로 그의 작품 『객지』(1971)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1943년 12월 14일 만주 장춘에서 출생
1945년 해방과 함께 모친과 고향인 평양 외가로 나옴
1947년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
1950년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비란지를 전전함
1956년 중학교 입학
1959년 고등학교 입학. 『학원(學苑)』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八字嶺)이 당선
1960년 『학원』에 단편 「의식」, 「부활 이전」발표함. 당시 국회의사당이던 부민관 앞에 시청 앞에서 4․19를 맞음 함께 있던 안종길군이 경찰의 총탄에 희생됨. 그의 유고시집
『봄, 밤, 별』을 친구들과 함께 편집 발간
1961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 「출옥일」당선
1962년 봄에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하여 남도지방을 방랑하다 그해 10월에 돌아옴.
11월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제2한강교 건설노동자와 남도로 내려감. 신탄진 연초공장에서 일용노동. 그 후 청주, 진주 마산 등지를 떠 돌며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칠북의 장춘사(長春寺)에서 입산. 동래 범어사를 거쳐
금강원에서 행자 노릇을 하다 모친과 상봉하여 상경함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이듬해 청룡부대 제 2진으로 베트남전 참전
1969년 5월 제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환영의 돛」이 각각 당선과 가작의 영예를 얻음.
「돌아온 사람」 발표
1971년 단편 「가화(假花)」, 「줄자」, 중편 「객지」 발표
1972년 단편 「아우를 위하여」, 「낙타누깔」. 「밀살」, 「기념사진」, 「이웃사람」 중편 「한씨연대 기」 발표
1973년 구로 공단 공장 취업. 단편 「잡초」, 「삼포 가는 길」, 「야근」,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섬섬옥수」, 중편 「돼지꿈」, 르포 「구로공단의 노동실태」를 발표
1974년 단편 「장사의 꿈」, 사북탄광에 대한 르포 「벽지의 하늘」, 공단 여성근로자의 삶을 취재한 「잃어버린 순이」 발표. 4월에 첫 창작집 『객지』발간. 7월 한국일보에 대하 소설 『장길산』 연재.
1975년 단편 「가객」, 희곡 「산국(山菊)」 발표. 소설집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소설선
『삼포 가는 길』 발간. 「신판의 집」 서울신문에 연재
1976년 단편 「몰개월의 새」, 「한등」, 「철길」 발표, 르포 「장돌림」 발표. 가을에 전남 해남으
로 이주
1977년 단편 「종노(種奴)」 발표. 『무기의 그늘』의 기초가 된 「난장(亂場)」을 11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한국문학』에 연재. 『심판의 집』 발간. 해남에서 ‘사랑방 농민학교’를 시 작. 호남을 중심으로 한 현장문화운동 시작
1978년 소설집 『가객(歌客)』발간. 문화패 ‘광대’ 창설. ‘민중문화연구소’ 설립, 광주로 이주
1979년 ‘현대문화연구소’의 문화운동에 참여. 계엄법 위반으로 검거됐으나 기수유예 처분됨
1980년 광주항쟁 일어남. 젊은 동료들 수십여 명 사망.
1981년 희곡집 『장산곶매』, 소설선 『돼지꿈』 발간. ‘광주사태 수사당국’의 권유로 제주도로 이주. 제주에서 문화패 ‘수눌음’과 소극장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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