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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 시기의 왕건과 호족 사회의 성립에 대하여

저작시기 2014.11 |등록일 2017.06.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1. 서론
2. 신라 말기의 상황
3. 호족과 사회변동
4. 태조의 호족 연합 정책
5. 결론
6. 참고자료

본문내용

이번 보고서는 관심을 가져 생각해 본 결과 나말여초의 사회변동과 태조의 호족정치에 대해 주로 하여 호족이 어떻게 성장하였나에 대하여 탐구하였고, 이러한 탐구활동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우선 통일신라는 9세기말에 이르러서 사회적으로 구조적 모순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참 한동안 신라의 사회구조를 버티고 있던 신분제도인 골품(骨品)제가 그 주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또한 통치체제가 약해지면서 지방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난이 자주 일어나고, 새롭게 떠오르는 지방 호족이 크게 나타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말여초의 교체에 있어서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주도한 세력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호족이다. 신라 하대 토착적인 촌주 층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저절로 지방으로 밀려나게 된 중앙귀족 출신자나 군인세력이 점점 지방 호족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호족은,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진성여왕대로부터 고려 초 귀족사회가 형성되는 성종 시기까지 약 1세기 동안, 지방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그래서 이 1세기 동안의 사회를 ‘호족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로운 사회질서와 정치체제가 성립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혼란이었다.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호족의 몫이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게 된 것과 왕건을 따른 호족세력의 융합에서 우리는 고려 건국기의 호족세력이 얼마만큼의 권력을 가졌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결과 고려 태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즉 각각의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호족들을 잘 다스리고, 그 후 이 호족들을 압박하여 강화된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려는 처음부터 지방호족세력을 근본적으로 해체시켜 단일국가 체제를 이룩한 것이 아니고 국가와 지방호족과의 연합구조 위에서 성립하게 된 호족 연합적인 국가체제가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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