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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매창의 문학론-유희경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저작시기 2015.11 |등록일 2017.05.30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이매창의 생애
2. 이매창의 시세계
3. 촌은(材隱) 유희경(劉希慶)과의 사랑과 이별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에게 삼종지도(三從之道),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규범을 따를 것을 요구 하였다.
그 결과 이 시대 여성들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그저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인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나 학문 연구는 생각할 수 없었고, 여성이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다하더라도 그것이 후대까지 전해지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비교적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던 여성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기녀계층이었다. 기녀들은 일반 부녀자와는 달리 특수한 신분적 조건 때문에 도덕규범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자신들의 감정을 문학에 담아 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녀들 역시 여성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향락 도구로서 생활하였으므로 그들 역시 깊은 애환과 정한을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조선 시대 여류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기녀들의 작품에서도 역시 그러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매창(李梅窓)은 유희경(劉希慶), 직소폭포와 더불어 부안삼절(扶安三絶)로 불리며 황진이(黃眞伊)와 함께 조선조 기녀문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선 중기의 기녀 이매창의 생애와 그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유희경과의 사랑과 이별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지어 그의 문학 작품 세계를 고찰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이매창의 생애
이매창(1573-1610)은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다. 계유년 생이므로 계생(桂生, 癸生)이라 하였으며, 자라면서 향금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천부적인 재질이 있다 하여 천향이란 이름을 갖기도 했다.
처음 기생이 되어서는 섬초라고 불리기도 했다가 후에 스스로 매창이라고 지어 불렀다. 매창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글재주가 뛰어났다. 부친 이탕종에게서 한학을 배웠다고 전해지며, 시문과 거문고도 가능했다고 한다.
1668년 12월에 개암사(開岩寺)에서 개간한 『매창집(梅窓集)』발문에는 매창에 대한 간단한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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