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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에 관한 고찰 리포트

저작시기 2017.05 |등록일 2017.05.3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백제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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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백제 문화의 성격에 대해 지리적 환경, 토목, 건축, 공예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온축해 왔다. 이는 나아가 고대 동아시아 공유 문화권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해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찍이 일본의 고대 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백제는 천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553년 일본 왕의 요청으로 천문학자인 고덕과 왕보손을 파견하여 지도하였고, 602년에는 승려 관륵을 파견하여 천문 서적과 역서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백제 석공 아비지는 신라로 건너가 첨성대를 만들었다. 백제는 고구려와 마한의 과학기술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천문학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한강 유역을 상실한 5세기 말 부터는 고구려, 신라와 대립하면서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백제의 역법을 본다면, <삼국사기> 백제 본기의 연대기에는 윤달 기사가 보이지 않아, 백제가 언제부터 어떠한 역법을 체계적으로 사용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무령왕 대 이후 백제가 원가력을 사용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왕과 왕비의 묘지석에 새겨진 천지삭일 (天支朔日)을 원가력으로 추산하여 백제가 원가력을 사용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백제본기에 기록된 총 60건의 천지 현상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26건의 일식 기록을 검토하고, 무령왕 당시 양나라의 역법을 적용한 결과, 무령왕 10년(510) 이후와 성왕과 위덕왕대는 원가력의 단점(200년을 경과하면 하루의 오차가 발생)을 보완한 대명력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제가 대명력을 수용했다는걸 입증할 만 한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춘 2월에 하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백제본기에 2건이 보이지만, 고이왕(234~286) 부터는 춘정월에 제천한 기록이 7건 등장한다.

참고 자료

역사문화총서 < 서해와 금강이 만나 이룬 문화 1 > 이해준 지음
논문 < 백제(百濟) 문화(文化)의 우수성(優秀性)과 국제성(國際性) > 양기석 지음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백제의 사회경제와 과학기술>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백제의 건축과 토목>
한국목간학회 <百濟의 ‘九九段’ 木簡과 術數學> 윤선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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