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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심의 문학과 사상

저작시기 2016.04 |등록일 2017.05.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700원

소개글

고려의 승려이자 문학가, 시인인 무의자 혜심의 불교사상과 문학사상, 그리고 작품들에 대하여 정리하고 분석한 글입니다. 발표할 때 나눠주는 팜플렛의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유용할 것이고, 그 내용도 많은 문헌을 참고하여 중요한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차

1. 생애 (1178~1234)
2. 선종과 지눌
3. 혜심의 불교 사상
4. 혜심의 저술
5. 혜심의 문학관
6. 혜심의 선시
7. 혜심의 게송
8. 혜심의 가전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생애 (1178~1234)
성은 최씨.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법명은 혜심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완(琬)이며, 어머니는 배씨이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 2대 사주(社主)가 되어,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시켰다.
120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 들어갔으나, 다음 해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1208년에는 지눌이 그에게 수선사의 사주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지리산으로 피하여 오래도록 숨어 지내다가 지눌이 입적(入寂)하자 왕명에 의해 수선사에 들어가 사주가 되었다. 이후 그는 조정의 지원을 받아 수선사를 확장하고 선사(禪師)의 선풍(禪風)을 더욱 진작시켰는데, 그의 문하에는 뛰어난 승려들도 많았지만 최우를 비롯해 당시 무신집권자들의 가족과 무신정권에 참여했던 수많은 문무 관료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1216년에는 고종의 명으로 대선사(大禪師)의 자리에 올랐으며, 1219년에는 단속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는데 여러 번 사양하다가 이듬해 부임했다. 그러다가 1234년 6월 26일에 문인 임속에게 “이 늙은이가 오늘은 너무 바쁘다.”라고 말하고는 생사에 초연한 좌탈입망(坐脫立亡)의 경지를 보여주며 가부좌한 채로 앉아서 입적했다. 세속의 나이 56세, 불가에 입문한지 32년만이었다.
고종은 1250년에 살아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였음을 인정하여 그에게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詩號)를 내렸다.

2. 선종과 지눌
1) 무신란 이후의 불교
무신 정권은 종래의 구 귀족세력과 결합 되었던 교종 세력(화엄종, 천태종)을 대신하여 선종 세력을 지원하였는데, 지눌이 창건한 조계산 수선사가 그 중심이 됨.

2) 선종 사상
① 불립문자(不立文字) : 문자는 깨달음의 방편 수단일 뿐, 진리의 깨달음은 문자를 떠나 곧바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서 본성을 보아야 하는 것.

참고 자료

김승찬·이헌홍 외. 『한국의 문학사상』. 세종출판사, 1998.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2005.
이상미. 『무의자의 선시 연구』. 도서출판 박이정, 2005.
이상미. 『진각혜심의 게송문학』. 도서출판 박이정, 2007.
한국불교원전연구회. 『인물로 보는 한국의 불교 사상』. 예문서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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