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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패망과정과 신라사적 의미

저작시기 2017.04 |등록일 2017.04.22 | 최종수정일 2017.04.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가야의 패망과정과 신라사적 의미에 관한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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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5~6세기 가야국의 대외관계와 멸망과정
2. 가야 병합의 신라사적 의미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 서 론 >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대사회의 획기적 사건으로 오랫동안 주목을 받아왔다. 앞의 말에서 보듯이 ‘통일’을 말할 땐 항상 ‘삼국’이란 수식어가 따른다. 이것은 ‘가야’가 통일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가야가 고대왕국으로 성립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왕국의 통일을 의미하는 신라의 통일논의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야의 병합이 신라의 통일에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의 연구가 가야의 발전과 멸망의 과정속에서의 대외관계연구가 주류를 이룬 경향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신라의 가야 병합은 그 자체가 하나의 통일 과정이며 그 의미를 되돌아 보건대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에서 신라의 가야 병합과 그 결과로 나타난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본 론 >
1. 5~6세기 가야국의 대외관계와 멸망과정
가야는 고구려군의 가야지역 남하와 관련하여 크게 세력변화를 겪는다. 김해, 부산, 밀양 등 금관가야를 중심으로한 전기의 낙동강 하류의 세력이 고구려군의 남하이후 합천, 고령 등 대가야세력 중심으로 재편된다. 여기서는 고구려 남하이후, 곧 5세기이후 대가야 중심으로 재편된 세력을 중심으로 대외관계와 멸망과정을 알아보고자한다.

5세기 가야의 상황
고구려군 남하이후 대가야는 높은 농업생산성과, 제철 능력 등 여러 유리한 조건등을 바탕으로 가야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이때를 즈음하여 대가야는 활동을 전개하는데 5세기후반에 와서는 여러 계통의 문헌 기록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로 『南齊書』권58 東南夷傳의 가락국조의 기록이 눈에 띈다.

가락국(伽羅國)은 삼한의 종족이다. 건원(建元) 원년에 국왕 하지(荷知)의 사신이 와서 공물을 바쳤다.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널리 헤아려 비로소 등극하니 먼 오랑캐에까지 교화가 미치는구나. 가라왕 하지가 바다밖에서 방문하여 동쪽 멀리서 폐백을 바쳤다.

참고 자료

정운용, 「6世紀 新羅의 伽倻 倂合과 그 意味」『史叢』52
金泰植,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1권)』, 푸른역사, 200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7 -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Ⅲ (신라․가야)』, 국사편찬위원회 1997
金泰植, 『伽倻聯盟史』
『日本書紀』
김부식,『三國史記』
일연, 『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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