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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저작시기 2017.04 |등록일 2017.04.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생애
1. 출생과 가족관계
2. 성장기/청년기
3. 벼슬시절
4. 유배시절과 학문적 업적
5. 만년기
6. 후학

Ⅱ. 교류관계
1. 다산과 이가환
2. 다산과 권철신
3. 다산과 이기양
4. 다산과 정약전
5. 다산과 정조

Ⅲ. 사상
1. 성현들과의 만남
1) 다산과 공자
2) 다산과 주자
3) 다산과 퇴계
4) 다산과 율곡
5) 다산과 성호
2. 인간관
3. 주역관
4. 실학사상
5. 과학사상

Ⅳ. 저서
1. <경세유표>
2. <목민심서>
3. <흠흠심서>

Ⅴ. 다산의 유적지
1. 경기도권 유적지
2. 남도권(강진) 유적지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생애
1. 출생과 가족관계
[요약]
다산 정약용은 1762년(조선 후기) 한강변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씨 집안은 8대 연속 홍문관 학사를 배출한 적이 있는 집안이었고, 외가는 학문과 예술의 집안이었다. 형제들은 학문적 재주가 있어 실학과 서학(천주교)에 일찍 눈을 떴으나 꽉 막힌 시대와 당쟁에 희생되고 말았다.

다산 정약용은 1762년(임오년, 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아버지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한강 강변 마현 마을이다. 당시로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이고,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8대 연속 홍문관(옥당) 학사를 배출한 집안
정씨 집안의 본관은 나주(螺舟 : 押海)다. 고려 말에 배천(白川)에서 살다가 조선왕조를 세울 무렵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맨 처음 벼슬을 한 선조는 승문원(承文院) 교리를 지낸 자급(子伋)으로 이때부터 쭉 이어져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수강(壽崗), 병조 판서 옥형(玉亨), 의정부 좌찬성 응두(應斗), 사헌부 대사헌 윤복(胤福), 강원도 관찰사 호선(好善), 홍문관 교리 언벽(彦璧), 병조 참의를 지낸 시윤(時潤)은 모두 옥당(玉堂)에 들어갔었다.
5대조 정시윤은 만년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근처인 ‘마재’에 터를 잡아 은거했다. 정약용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3대는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고조의 이름은 도태(道泰), 증조의 이름은 항신(恒愼), 조부의 이름은 지해(志諧), 오직 증조만이 진사였다.
아버지 정재원은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음사; 蔭仕)로 벼슬에 나갔다.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고, 조정에 들어와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晉州牧使)까지 지냈다.

참고 자료

고승제(학술원 회원), <다산을 찾아서>, 중앙일보사, 1995
예문동양사상연구원 ․ 박홍식 편저, <한국사상가10人, 다산 정약용>, 예문서원, 2005
김교빈, <한국철학 에세이>, 동녘, 2009
이덕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 김영사, 2004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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