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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조의 리더쉽

저작시기 2017.04 |등록일 2017.04.06 | 최종수정일 2017.04.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생애
2. 업적
2-1. 왕권강화
2-2. 화성축조
2-3.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
3. 리더로서의 능력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조선시대 성군을 뽑자면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의 세종대왕과 후기의 정조를 뽑는다. 세종대왕이 애민 정신으로 많은 업적들을 세우고 조선 전기 태평성대를 이끈 업적군주라면, 정조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통합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한 개혁군주였다. 요즘처럼 혼란한 정국에서는 세종대왕과 같은 업적 군주보다는, 탕평책으로 정치 세력을 규합하여 정치 정의에 힘쓴 정조가 더 어울릴 것이다. 정조는 훌륭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치적 조화를 이룬 리더였다. 그러나 정조는 왕이 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본론
1. 생애
정조는 조선 22대 왕으로 영조의 손자이자 장헌세자, 그 유명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은 것이 정조 나이 11살이었다. 사도세자가 세자신분을 박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 당하자, 정조도 같이 궁에서 쫓겨났다. 그 뒤 영조가 뒤를 이을 사람이 없자 다시 불려들었지만 역적지자 불위군왕, 역적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조를 죽은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세손으로 책봉하였다. 그 후 영조에게 14년간 긴 세손수업을 받다가 영조 사후 죽자 25세에 즉위하였다. 정조는 경희궁에서 즉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이 된 사람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사람들 즉, 노론 세력과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노론은 정조를 해치지 않으면 안되었고, 집권한지 1년 만에 정조의 침전 존현각에 자객을 보낸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왕이 있었지만, 왕의 침전까지 암살조가 쳐들어온 것은 정조 이외에 전무후무하다. 그 후로도 정조 집권 초기에는 역모와 반란의 연속이었다. 정조는 영조에 이어 탕평정치를 펼쳤으며 규장각과 장용영 등을 만들어 자기 세력을 갖추고 수원에 화성을 건축해 비밀리에 천도를 계획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개혁은 미완으로 남았다.

참고 자료

정조, 민심이 원하는 개혁에 힘쓰다!(2016),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제 481호, 제1면
이다지(2015), 『이다지 한국사 : 전근대 편 : 흥미진진 스토리텔링으로 한국사 다지기』, 브레인스토어 P131.
정조(1814), 『일득록』, 문자향, 2008
“정조”, <네이버백과사전>, 네이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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