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황비홍에 대하여

저작시기 2017.04 |등록일 2017.04.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1,300원

목차

1. 들어가며
2. 첫 번째 탄생
3. 두 번째 탄생
4. 개혁개방의 표상 – 취권의 황비홍
5. 새로운 중국의 정체성
6. 나가며
7. 참고자료

본문내용

들어가며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반 까지, 중국은 혼란스러웠다. 외부적으로는 서구열강의 군사적, 경제적 침탈을 받았으며 내부적으로는 많은 반란들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난세였다. 이 혼란한 무대에서 많은 이들은 주연배우가 되고자 했다. 예수의 동생이라 자칭하고 중국을 뒤흔든 태평천국운동의 주모자 홍수전(洪秀全), 이를 제압하고 양무운동을 전개한 증국번(曾國藩)과 이홍장(李鴻章),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추진한 몽상가 강유위(康有爲), 그를 배반하고 후에 스스로 황제라 칭한 원세개(袁世凱) 등 후한(後漢) 말 군웅할거(群雄割據)와 비견될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떠올랐고 또 저물었다. 많은 이들은 이 난세의 영웅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시기의 중국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떠올린 인물은 생몰년도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일개 의원이자 무술인, 황비홍(黃飛鴻)이었다.

참고 자료

1979, 1994, ‘취권1,2’
1991, 1993, ‘이연걸의 황비홍 1,2’
2014,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 황비홍’
2009, 마리-끌레르 베르제르 지음, 박상수 옮김, 심산, 『중국 현대사』
2002, 한중사회과학연구회 엮음, 한울아카데미, 『현대 중국의 이해』
2010, 강진아 지음, 창비,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2008, 김동식, 영상예술연구, 「식민의 역사, 동아시아의 기억」
2013, 윤영도, 한국중어중문학회, 「1950년대 황비홍 현상의 문화 사회사적 맥락 연구」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