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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저작시기 2016.06 |등록일 2017.03.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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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정치 최고의 장면은 1987년 있었던 ‘6월 항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6월 항쟁’은 동시에 최악의 장면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독재와 권위주의의 연속이었다. 초대 대통령부터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두 차례나 했고, 집권을 위한 개헌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개헌 과정 속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강압적인 관제데모 등이 수없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국민들의 저항 또한 함께 했고, 저항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줄기를 형성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한 4.19혁명에서부터,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부마항쟁,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 많은 민주화 운동이 역사 속에 나타났었다. 하지만 많은 항쟁들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군부정권, 독재정권의 행보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많은 항쟁을 끝맺은 것이 바로 ‘6월 항쟁’이다. 6월 항쟁은 그로부터 만든 민주주의 체계가 다시 역전되지 않았고, 지금의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가지며 최고의 장면으로 뽑을 수 있다. 반면 그 민주화 이행이 보수적 민주화 이행에 머물렀으며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만든 점에서 최악의 장면으로 뽑을 수도 있다.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6월 민주화 항쟁은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진보적인 운동세력에서 시작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라는 범국민적 반체제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개헌과정을 주도한 것은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의 8인위원회였다. 개헌과정 속에 진보적 정치세력 또는 국민적 합의는 존재하지 못했다. 소수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개헌과정은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에 급급했다. 그들이 관심을 두었던 것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대통령의 권한 축소, 국회의 권환 확대 등의 권력구조였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에 머무른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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