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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설화 속에서 본 일연의 자주의식

저작시기 2016.12 |등록일 2017.03.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삼국유사의 설화 속에서 찾은 당시의 자주성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삼국유사 설화를 중심으로 분석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약해진 자주성 이전의 자주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일연의 설화 속 역사인식
Ⅲ. 승려 일연의 자주의식과 불교
Ⅳ. 「삼국유사」 편찬 시기와 의도
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자주성의 계승
Ⅵ. 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제 오는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하고자 함이다.
왜? 전해 내려오던 문화 사상의 종교 · 논리 · 문학 · 미술 · 풍속 ·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중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함이니라.

1923년 1월, 신채호가 의열단의 독립운동이념과 방략을 정리하여 만든 「조선혁명선언」이다. 신채호는 이 「조선혁명선언」에서 조선에 내려온 문화 사상을 노예적이라고 표현하며 조선에 내려온 문화 사상은 강자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다고 이야기 하게 된다. 조선의 문화 사상이 강자 중심이라는 것은 외국을 대하는 태도. 즉 사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여기서 사대라는 관계는 왜나 오랑캐들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과거 조선이 사대하던 대상은 누구인가. 조선이 사대를 하던 명 혹은 청이다. 즉, 신채호가 생각한 조선의 문화 사상은 명과 청이 제조하여 명과 청을 옹호하던, 그리고 이 선언문이 쓰여질 당시의 일제 강점기와 같은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자주성이 결여된 사상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조선의 문화 사상은 고려에서, 더 크게 보면 고대, 삼국시대에서, 더 깊게 내려간다면 고조선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와 삼국시대의 문화 사상 또한, 자주성이 결여되어 있는가? 물론 예로부터 한반도는 대륙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대륙의 문화와 제도 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와 삼국시대는 자주적인 문화 사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삼국유사」는 고조선, 단군왕검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 그리고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설화 및 전설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참고 자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엄태웅, 『삼국유사』 「기이」 부여ㆍ고구려 관련 기사의 서술 의도 -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ㆍ서사적 접근 -, 1986
차광호, 『삼국유사』 ‘기이편’의 저술의도와 고구려 인식, 사학지 제41집 (2009년 8월) pp.53-72 1226-1548 AHCI
이연숙, 일연의 『 삼국유사 』 편찬 의도에 관한 일고찰 - 신주편을 중심으로, 새얼어문논집 8권 시작쪽수 135p, 전체쪽수 19p 1598-1460 , 1995
김용헌, 조선전기 사림파 성리학의 전개와 특징, 국학연구 제19집, 2011.12, 35-79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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