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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분석과 작품사례분석

저작시기 2016.12 |등록일 2017.03.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본문요약

Ⅱ. 견해

Ⅲ. 작품분석
1. 가는 길
2. 산유화
3. 초혼
4. 님에게
5. 진달래꽃

본문내용

이름: 김소월
출생-사망: 1902. 9. 7 - 1934. 12. 24
직업: 시인
국적: 대한민국
배우자: 홍단실
부모: 김성도(부), 장경숙(모)
작품: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초혼 등

(본문요약)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안북도 관산 군에서 성장하였다. 김소월은 오산학교를 졸업하였다. 오산학교는 독립투사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였다. 하지만 오산학교는 정식적 일제로부터 인정받는 학교가 아니었다. 졸업을 해도 대학으로 진학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김소율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도 배재고등학교로 편입한다. 편입을 한 이유는 정식적으로 허가를 위해서 들어갔다. 그 후 김소월은 배재고 졸업 후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도쿄상대는 명문대중 명문대이다. 하지만, 불운으로 관동지진이 일어나 일본이 큰 문제가 생겼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 희생이 매우 컸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일본인들을 죽였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기 시작했고, 김소월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청년시절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오산학교에서 ‘김억’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좋은 일을 많이 한 시인 중에 한분이다. 중요한 관점은 김소월을 발굴해 문단에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만식 선생은 다양한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앞장섰던 인물 중에 한명이다. 민족의식에 눈뜨면서 김억 선생을 통해서 문학을 배우고 느끼고 작품들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김소월의 불운은 어렸을 적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가 광산업 등을 하여 넉넉한 형편으로 살고 있었다. 1904년 처가로 가던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컸다. 김소월은 어린나이에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성격이 내성적인 이유는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정신적, 정서적 차원에서 비교적 음울한 색체가 강하기 시작하였고, 벗어나기 위해 시에 몰두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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