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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교육의 역사와 의견 (A+)

저작시기 2016.03 |등록일 2017.01.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여성교육의 역사와 그에 대한 의견을 서술한 과제입니다. 열심히 작성하였고 A+받았습니다.

목차

1. 여성교육의 역사
2. 여성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우리 나라의 여성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조선시대 여성들에 비하여 자유롭고 독립된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 고대의 가족제도를 살펴보면 부계보다 모계에 치중하였으며, 혼인에서도 혼례 뒤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사는 데릴사위제도가 일반적이었다. 또한 고구려의 혼속은 ≪삼국지≫ 동이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녀동등의 권리를 기본으로 삼은 자유결혼이 성하였고, 신라에서도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결혼을 한다.”고 하여 조선시대와는 크게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신라에 3명의 여왕이 있었던 사실도 비록 골품제도에 따른 것이라 하지만 남녀차별이 없었음을 나타내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는 화랑단체의 최초 시험기에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여성을 지도자로 삼았다. 이는 당시 신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잘 반영해주는 것으로 신분과 교양이 갖추어진 여성이 평민계급의 소년을 지도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시대성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여성의 생활은 대단히 자유로워 솔직하고 자유로운 남녀관계가 이루어졌으며, 가계계승에 있어서도 남손이 없을 경우에는 여손, 즉 외손도 가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여성의 교육에 있어서는 상세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나, 이러한 당시의 사회풍조로 보아 태학이나 경당 등 교육기관에 있어서의 교육은 받지 않았더라도 조선시대처럼 교육의 기회나 내용에 많은 제약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와서는 외적의 침입, 정변과 반란, 공녀제도 등으로 여성들이 자연 규방에 숨어버리면서 조혼이 성행하게 되었다.

<중 략>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이 학문을 닦는 것은 부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보았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여자와 소인은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하였고, ≪천자문≫에서도 남자에게는 재주를, 여자에게는 정절만을 요구하였다. 또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내외법과 ‘여자나이 10세면 출입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거의 외출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제도적 교육기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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