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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이 만들어졌던 것은 오히려 朝鮮이 당시 동아시아에서 明이라는 “중화(中華)”의 문명과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연동되어 있었던 역사적 맥락 안에서 발생한 역사적 현상이었다는 점을, 최대한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논하라.

저작시기 2016.12 |등록일 2017.01.10 | 최종수정일 2017.05.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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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먼저 훈민정음에 대한 국어학계 및 한국사학계의 기존 학설을 살펴보겠다. 훈민정음의 창제시기에 있어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아직 훈민정음이 반포되지 않은 시점인 세종 25년 12월 경숙일조, 정비를 거쳐 완전히 반포된 세종 28년 9월 갑오일이다. 다음으로 훈민정음의 창제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먼저 협찬설이다. 15세기 말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언급되어 있는데, 세종이 언문청을 설치하고, 성삼문, 신숙주에게 명하여 언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19세기 유희의 [언문지]에서는 “세종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몽고 문자를 본떠서 황찬에게 질문하게 하여 언문을 만드셨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다음으로 친제설이다. 세종실록 권 102, 세종 25년 12월 경숙일에 “이달에 상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라는 기록이 있다. 주변에 의한 반대 우려로 인해 훈민정음 창제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창제에 참여한 자는 세자와 수양대군, 안평대군뿐이고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한 것은 세종 26년 이후라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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