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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와 기지촌 성매매 상관관계

저작시기 2016.11 |등록일 2016.12.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3,500원

소개글

일본군 위안부와 기지촌 성매매 상관관계에 대해 A+ 학점을 받은 소중한 레포트자료입니다. 좋은 Sample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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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군 위안부는 세계 2차 대전에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로 동원 및 징용돼 강압적으로 성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뜻한다. 종군위안부라는 말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범죄 행위의 주체가 모호한 표현임과 동시에 ‘종군(從軍)’이라는 표현 자체가 ‘군사를 쫓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자발적 참여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정확히 범행의 주체가 뚜렷하고 그 행위의 강제성이 드러나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는 주로 조선인과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일본이 점령한 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도 징발되었다. 고증에 따르면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는 하루에 30번 이상의 성관계를 강요받는 등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파괴된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한편,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는 세계 2차 대전 종식 후 종적을 감추었다가 1990년 일본군 위안부의 유일한 유럽국가인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에 의해 알려지면서 드러나게 된다. 이에 각국, 특히 한국에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는 경우가 늘어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문제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사죄 의사를 표현하기는 했으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하거나 모호한 입장 표명으로 진정성 없는 사과가 이어지고 나아가 해당 문제를 빠르게 마무리 짓기 급급한 모습을 보여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기지촌 여성이라고도 불렸던 미군 위안부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이다. 이미 1948년에 관청에서 허가를 받고 매매를 하는 행위인 ‘공창’이 ‘공창 폐지령’을 통해 사라지고 이로 인해 성매매가 금지되었으나 1951년 한국 정부가 직접 한국군 위안부를 조성해 한국 장병과 유엔 장병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도록 하였다는 정황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1950년대 이후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연속해서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고 빈곤한 상황에 노이게 된다.

참고 자료

박유미(2006). 해방 이후 공창제 폐찌와 그 영향. 상명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정진성(2003). 전시 하 여성침해의 보편성과 역사적 특수성 :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한국여성학 제19권 2호. pp 39-61.
조명숙(2006).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여성 신학적 접근 : K-55 미 공군 오산기지를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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