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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를 통해 본 환국정치 보고서

저작시기 2015.02 |등록일 2016.01.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I. 서론
1. 문제제기
2. 연구목적

II. 본론
1. 궁녀의 삶.
1)궁녀의 유래
2)궁녀의 범주와 명칭
3)여관의 조직
4)궁녀의 선발과 입궁
5)궁녀들의 성과 사랑
6)출궁과 죽음

2. 숙종시대 정치적 상황과, 희빈 장 씨와 숙빈 최 씨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기록
1)숙종시대의 환국정치
2)궁녀에서 숙종의 여인이 되기까지: 희빈 장 씨와 숙빈 최 씨
3)사극에 등장한 두 여인

3. 여인으로서의 장희빈과 숙빈 최씨
1)장희빈
2)숙빈 최씨

4. 정치적 이해관계 속의 장희빈과 숙빈 최씨
1)장희빈
2)숙빈 최씨
3)숙종의 정치 속 두 여인

III. 결론

IV.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궁녀의 삶

1. 궁녀의 유래
궁녀란 궁중에서 왕과 왕비 등 왕실 가족들을 모시고 일하던 여인들을 말한다.
궁녀의 기원은 중국의 3대 하, 은, 주 대부터 존재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 <부여현>조에 백제가 망할 때 낙화암에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아 백제에 궁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 하지만 이는 중국을 모방한 과장일 뿐이며 조선시대의 야사나 현대에 와서 유행한 가요에 등장한 허구다. 더구나 한반도 일부에 할거했던 백제가 삼천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궁녀를 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봐야 한다.
《삼국사기》제 39권 <직관>조의 여성 주도의 관청 명을 보았을 때 단순한 노동을 제공했는지 왕을 모시는 임무를 맡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신라시대에 이미 궁녀제도가 정착했음은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삼천궁녀에 비해 삼백궁녀라 하여 수백 명의 궁녀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조에는 대략 500~600명 정도의 궁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조 때 학자인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는 조선의 궁녀 총수가 684명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궁녀의 수가 항상 이 정도였던 것은 아니다. 잠깐이기는 해도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 시절에는 1,000여명에 이르는 궁녀가 있었다.
고종 말기에는 궁녀의 수가 200명 정도였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된 시기라 원래 궁녀 수의 3분의 1정도로 줄여진 것이다.

2. 궁녀의 범주와 명칭
조선조를 기준으로 궁녀의 범위를 알아보자.
궁녀는 내명부의 총칭이며 말 그대로 궁궐 안에서 살거나 근무하는 여자들이다. 그러나 궁궐 안에 산다고 하여 모두가 궁녀는 아니다.
『대전회통』에 따르면 궁녀란 ‘궁중여관’의 별칭으로 궁중에 머물면서 일정한 지위와 월봉을 받는 왕조시대의 여성 공무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궁녀는 일반적으로는 상궁과 나인만을 의미하지만, 크게 내명부의 품계를 받는 여관과 품계를 받지 못하는 천비로 나눌 수 있다.
여관으로는 나인과 상궁이 있고, 천비들로는 비자, 방자, 무수리 등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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