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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으로 알아보는 한국사

저작시기 2014.03 |등록일 2016.01.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고유 양식기 (고조선~삼국시대)
Ⅱ. 고유 양식 전개기 (통일신라~고려전기)
Ⅲ. 전통양식 형성기 (고려후기~조선전기)
Ⅳ. 전통 양식기 (조선중후기)
Ⅴ. 전통 양식의 새로운 전개기 (개화기 이후)
Ⅵ. 드라마 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의복의 오류

본문내용

고조선의 복식에 대한 역사는 여러 책과 같은 사료에 소개되어 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변(弁) (고깔모양의 모자)을 쓰거나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삼국지] <부여전>에는 “부여사람들은 흰색 옷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가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부여의 풍속을 나타낸 것 이지만 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임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풍속들은 고조선으로부터 내려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중 략>

백제도 역시 복식은 무풍(武風)적으로 발달되어 계급적 분화가 일어났는데, 제 7대 고이왕 때부터 품관제가 마련되어 관식과 의대색 으로 그 등위를 구별하여 왕, 신하, 평민의 복식구분이 명확해졌다. 벼슬아치의 품계를 16품으로 정하고 관모, 의대, 색깔 등으로 위아래를 구별하였다. 1품에서 6품까지 관모에 은으로 장식을 하게하고 의복은 6품 이상이 보라색, 12품 이상은 붉은색,16품 이상은 푸른색을 입었다. 또 기혼자와 미혼자의 복식구분이 있을 정도로 혼인관계에 의한 질서주의가 복식에 구체화되었던 것을 보면 당시의 복식은 신분관념에 의한 사회적 표상물일 뿐만 아니라 윤리 관념에 의한 사회적 표상물도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평민들은 붉은 옷을 입을 수 없었고 청올치(칡에서 뽑아낸 속껍질)나 삼베를 옷감으로 사용하였다.

<중 략>

신과 장신구를 보면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여성의 장신구 중 향낭, 침낭, 장도 등은 그 필요성이 줄어들어 의복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다만 성장(盛裝) 할 때 노리개 정도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주머니는 꽤 오랫동안 애용되었는데, 1930년대 이후 핸드백이 나오게 되자 젊은 층에서는 주머니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노인층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을 광복 전까지 볼 수 있다. 개화기 초에는 신발의 별 변화가 없다가 길이가 짧아진 양장과 통치마의 영향으로 극히 일부에서만 양말과 구두가 사용되었다.

참고 자료

우리 옷의 전통의복, 이화여대출판부
한국 복식의 역사 경춘사
우리 옷의 전통양식
http://www.alimnida.com/cmcmmsod.htm?code=cmcmmtbl&hang=99.%B4%DC%C3%BC%C8%A8&mok=10.%BF%B5%C1%D6%C1%DF%BE%D3%C3%CA%B5%EE%C7%D0%B1%B3%2013%C8%B8%B5%BF%B1%E2%C8%B8&seqnum=375&area=00&page=21&keyfield=&key=&mod=1&hsw=1&home=joongbu13
한국 영상매체에 나타난 의상 고증에 관한 연구-영·정조시대 TV 사극을 중심으로, 김지연, 채금석, 한국의류학회, <한국의류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009권 1호(2009), pp.99-100
우리 옷 이천년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시대 복식의 개요 (문화 콘텐츠 닷컴(문학원형백과 고려복식), 002, 한국콘텐츠 진흥원)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시대의 복식(역사로 본 전통머리, 2010.9.6., 광문각)
한국의 복식문화, 경춘사
http://cafe.naver.com/booheong/93769
http://kimpink.com/205970538
http://kimpink.com/20598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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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nbone&logNo=70169246455
http://cafe.daum.net/kanbs44/Dv7J/1777?q=%BB%EF%B1%B9%BD%C3%B4%EB%C0%C7%20%C0%C7%BA%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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