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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 독서보고서

저작시기 2015.12 |등록일 2016.01.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제 1장 16세기 종교개혁운동 개관
2. 제 7장 자유교회 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3. 제 8장 침례교회의 발생과 그 개척자들
4. 제 9장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

본문내용

[요약] <제 1장 16세기 종교개혁운동 개관>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크게 세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관료 후원적 종교개혁”, “근원적 종교개혁 (또는 급진적 종교개혁)” 그리고 “반종교 개혁 (또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자체개혁)”이다.

1. 관료 후원적 종교개혁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은 정치와 종교가 협력하고 결탁해서 성취한 종교개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범주에 드는 대표적인 개혁의 흐름은 루터교회, 개혁교회 그리고 영국국교회 등이다.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자들은 크리스천 세속 정치인들과 실력자들의 후원을 입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일치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모두 로마가톨릭 교회의 유아세례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다. 중세시대에는 유아세례가 국가와 교회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관료 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중세말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아주 많이 개혁했지만, 국가와 교회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2. 근원적 종교개혁
조지 윌리암스 박스는 교회와 국가 혹은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Radical Recormation이라고 명명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급진적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했고 그들 중 Anabaptists를 “재세례파”라고 표현했다. 기본적으로 근원적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의 뿌리인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를 “회복”하고자 했다. 로메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핍박을 종식시키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교와 포교의 자유는 얻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세속 정치권력과 결탁을 하게 됐고, 교회는 세속화 되고 타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6세기 초 근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콘스탄틴의 공생”이라고 부르는 국가와 교회의 연합을 교회 타락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보고, 313년 이전의 순수했던 교회, 즉 세속권력과 무관한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회복하려고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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