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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골

저작시기 2012.01 |등록일 2015.12.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3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성골 출신의 왕
Ⅲ. 율령국가로의 성장과 정복 사업의 전개
Ⅳ. 성골왕 시대의 정치적 성장과 그 성격
Ⅴ. 성골왕 시대의 끝
Ⅵ. 맺음말

본문내용

신라는 고구려, 백제, 가야등의 국가와는 달리 골품제가 존재하는 사회였다. 골품제도는 크게 골제(骨制)와 두품제(頭品制)로 나뉘었고, 골제는 다시 성골과 진골로 구성되었다. 성골은 신라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신분층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신분이다. 성골은 진덕여왕을 끝으로 사라졌으며 태종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순왕까지 진골 출신의 왕으로 세습되었다. 23대 법흥왕(514~540)에서 28대 진덕왕(647~654) 까지의 왕들은 성골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성골 왕 시대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법흥왕의 아버지였고 21대 소지왕의 재종제였던 22대 지증왕도 성골 왕 시대에 포함시켜 다루는 것이 편한 면이 있다. 특히 지증왕은 왕호를 사용하였고 덕업이 날로 새로워졌고 사방을 망라한다는 의미에서 신라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성골 왕은 상대등, 대등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초월적이고 신성한 지위에 있었다. 그 때문에 성골을 칭하였다. 화백회의를 귀족연합적인 성격으로 본 결과 성골 왕 시대를 귀족국가 시대로 보았던 것이다. 성골 왕 시대의 왕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은 중복된 근친혼을 통하여 혈연적으로 거의 모두가 중복된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왕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진 성골 왕 시대의 지배세력을 귀족 연합적인 성격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성골 왕과 상대등의 정치적 위상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졌다. 특히 왕 개인이 아니라 왕권은 귀족(실제는 신료)들의 대표라고 하는 상대등으로 임명하는 권한이 있었다.

<중 략>

마립간 시대 보다 왕정이 10배 강화되었다. 10배라는 수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성골 왕 시대의 신라는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한 문명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그 결과 신라가 발전시킨 국가 지배 체제는 그 결과 마립간 시대의 지배체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지닌 것이 되었다. 성골 왕 시대 신라는 가야를 병합하였고 북진 정책을 펴 현재 함경도 일대를 장악하였으며 나아가 한강을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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