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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명칭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11.12 |등록일 2015.12.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1) 동학농민운동이란?

2. 본론
1) 갑오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의 차이
2)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농민’이 누락된 이유.
3) 란(亂), 혁명(革命), 운동(運動)의 개념차이.

3. 결론

본문내용

서론
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1894년에 일어난 동학 주도의 운동에 대하여 2004년부터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명칭을 통일하여 표기하고 있다. 현재 명칭이 통일된 이 사건은 과거에는 견해와 이념, 그리고 시대상에 따라서 다양하게 명명되어왔다. 필자는 이 명칭이 왜 다양하게 명명되어왔는지는 이 사건의 계기와 과정, 결과에 따른 해석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양한 명칭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찾기 이전에 이 사건을 설명해주고자 한다.
동학농민운동은 1차 봉기와 2차 봉기로 나뉜다. 1차 봉기는 1892년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의 고율수세를 비롯한 온갖 학정에서 시작한다. 이에 전봉준을 중심으로 농민지도자들은 사발통문을 내고 봉기를 한다. 1894년 농민군은 고부 관아를 습격하고, 불법 수탈한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서서 농민군은 황토현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창ㆍ정읍 등을 공격한 후 전주성에 무혈입성 한다. 이에 정부는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하자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부는 농민군과 전주 화약을 맺고 폐정개혁안을 실시한다. 이에 농민군은 폐정개혁을 집행하기 위해 집강소를 설치함으로써 1차 봉기는 끝난다.
하지만 정부의 요청으로 들어온 청·일 군대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에서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한다. 그러던 와중 일본군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다. 그리고 대원군을 섭정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을 하자 농민군은 삼례에 투쟁본부를 두고 2차 봉기를 시작한다. 전봉준은 전주에서, 손화중은 광주에서 투쟁하고 전라남북도에서는 동학교도와 농민이 궐기한다. 하지만 이후 농민군은 공주 외곽의 우금치 등지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패하면서, 전봉준은 순창에서 11월 배반자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서울에서 처형된다.
이와 같이 동학농민운동의 계기 및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이 계기와 과정을 어떤 관점과 이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학자들이 이 사건을 부르는 명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명명되어왔고, 그것의 의미와 성격을 파악해보자.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2010, 한국사전연구사
<실록 동학농민혁명사>, 신순철·이진영 지음, 서경문화사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고찰> 논문
<전봉준공초>, <동학난기록> 하권
<동학과 동학혁명의 재인식>, 성주현, 국학 자료원,
서울신문, 이용원논설위원 논문(칼럼)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 신형식·이배용, 이화여대 출판부
http://donghak.jeongeup.go.kr 동학농민운동의 기본 성격에 대한 글
신용하,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사회사』, (주)지식산업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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