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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동양근현대사 및 동아시아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만주지역을 우리역사와 함께 비교하여 만든 레포트입니다. 발표 및 학습자료로 좋으며 A+을 받았습니다.

저작시기 2015.11 |등록일 2015.11.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300원

목차

1. 왜 만주라고 부를까
2. 만주에 존속했던 국가들
3. 만주국은 존재하였으나 존재하지 않았다.
4.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남겨진 그들, 조선족(朝鲜族)
5. 참고문헌

본문내용

■ 왜 만주라고 부를까
만주란 ‘만주족’이 발상하여 거주한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만주는 과거부터 고조선,부여, 고구려, 발해, 요(중국), 청나라(중국), 일본 등의 다양한 지배를 받았으며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만주(일제 침략의 불편한 역사를 상기하지 않도록)보다는 ‘둥베이’(동북, 東北)지방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 만주에 존속했던 국가들
• 고조선 (대릉하 유역, 요동, 송화강 유역, 한반도 북부, 초기 중심지는 만번한 등이 위치한 요동반도였으며 기원전 4세기 연나라의 침입 이후 요서 대릉하 유역을 잃고 요동의 대부분을 상실, 이후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하다 한나라에 멸망)
• 고구려 (주요 영역은 남만주, 송화강 이남, 한반도 북부, 고구려의 주몽이 엄리대수(송화강 상류)를 건너 만주 통강 유역의 졸본(환인현)에 정착하여 해당 지역의 소국인 졸본부여의 왕이 되어 고구려를 세웠다. 통일제국 중국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에 맞서다 당나라 장수 이적에 의해 멸망)
• 고리국 (북만주 일대, 이명으로 탁리국, 탁근국, 색리국 등이 있다. 지금의 흑룡강성 치치하얼(부유시)시 일대를 중심으로 하던 고대 국가, 부여의 시조 동명왕의 출생지, 고리국왕이 동명의 재주가 남다름을 두려워하여 죽이려하므로 부여의 동명왕이 엄호수(송화강)을 건너 송화강 남쪽 길림 일대로 도망가 부여를 세웠다. 부여와 백제의 뿌리,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 동명왕은 주몽이 아닌 부여의 동명왕이다. 주몽(도모왕)은 신찬성씨록에 백제의 원조 또는 태조로서 등장하고 있다)
• 부여 (송화강 유역 중심, 위만조선이 멸망하기 이전인 기원전 2~3세기 무렵에 동명왕에 의해 건국되었음. 3세기 무렵에 동으로 연해주 인근까지 접함, 북으로 송화강 중류와 흑룡강 하류와 접함, 서쪽으로 요하 상류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남만주 휘발하를 경계로 고구려와 접함, 선비족의 침입으로 국가가 쇠약해져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다.

참고 자료

한석정, 노기식 저,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소명출판(2008)
동북아 역사재단, 만주 그 땅 사람 그리고 역사 2014 개정판
한석정,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동아대학교 출판부 , 2007
황희경, 문화대혁명 시기 조선족에게는 무슨 일이 , 연합뉴스 2010
이돈구,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은 우리나라 미래의 귀중한 자산이다, 인터넷 일간지 동포투데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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