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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우왕 대 정치, 사회의 변동

저작시기 2015.01 |등록일 2015.05.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2페이지 | 가격 7,7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공민왕․우왕 대 정치의 변동
Ⅲ. 공민왕․우왕 대 사회의 변동
Ⅳ. 공민왕․우왕 대 사회 변동의 갈등
Ⅴ. 맺음말

본문내용

공민왕과 우왕 대는 원 간섭기와 조선 개창기 사이에 끼어 있는 시기입니다. 공민왕은 반원개혁을 통해 원의 간접지배에서 벗어나려 했고, 우왕은 북원을 이용해 명의 압력에 대응하려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전쟁과 정변이 이어지고 사회 이동이 활발해 무장 세력이 대두하고 평민과 노비가 성장하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신진 사대부에 초점을 맞춰 공민왕 대는 신진 사대부가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시기로, 우왕 대는 권문세족의 득세로 신진 사대부가 위축되는 시기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며, 두 시기는, 특히 우왕 대는 실패한 시기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공민왕 대에는 개혁정치 위주로, 우왕 대에는 족당 정치의 파행 위주로 다루는 경향이 농후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정형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武將 대 儒生(儒者, 儒臣), 士族(특히 유생) 대 非士族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려 합니다. 이 시기의 정치현상과 사회현상,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변동과 사회변동을 함께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중 략>

공민왕, 우왕 대는 무신정권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무장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공신․재상․요직의 다수를 차지해 세력을 떨쳤다. 문신 내지 유생은 정권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직의 진출․승진 및 경제적 이익에서 무신에게 밀리고 非士族 출신과 경쟁해야 했으며, 대간과 성균관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공민왕, 우왕 대 유생은 한편으로 무장과, 한편으로 비사족과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당시는 무장세력이 집권하였고 그 안에 비사족 출신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비사족에게 관대하였고 비사족이 성장해 세력이 컸으므로 유생의 무장을 견제하려는 시도와 비사족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유생은 무장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그와 손을 잡고 집권하게 되는데, 이는 무장세력 및 비사족의 쇠퇴와 사족(특히 유생) 지배질서로의 회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고려사 권38, 공민왕 원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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