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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기 남북한관계 - 푸에블로호 사건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3.10 | 등록일 2015.03.05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동북아정치에 관련하여 냉전시기 남북한 관계를 연구한 소논문입니다.
탈냉전 직전이었던 1968년에 벌어진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조망하였으며
그 중 미국 선박이었던 푸에블로호를 북한이 나포한 사건을 중심으로 북한-남한-미국-소련의
사각구도를 연구하였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1960년대 남북한관계 개괄

Ⅲ. 1968년 국내·외 사건
1. 1.21사태
2. 푸에블로호 사태
3. 한미국방장관회담
4.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Ⅳ. 베트남전쟁 · 닉슨독트린 · 데탕트

Ⅴ. 결론

본문내용

남­북한의 건국은 냉전과 함께 도래했다. 정확히는 남·북한의 건국과 한반도 분단은 냉전이라는 시대로부터 잉태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냉전은 미­소 양 열강의 이데올로기를 위시한 패권싸움에 역점을 두고 전개되었으나, 그 자체의 시대성과 국제관계, 지정학적 사실관계를 고려할 때 한반도 문제와 냉전이 갖는 상호불가분성은 자명하다. 그것은 미­소의 분할점령이 단순한 군사점령의 의미를 넘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전혀 상이한 두 체제의 탈식민지사회로의 매개적 이식, 즉 외삽의 시작을 뜻하며 국제적인 냉전의 한국화, 한반도가 국제적인 냉전논리에 편입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냉전의 역사적 의의나, 양 진영의 사상대결이 직면한 한반도문제의 중요성에 비하여 냉전시기 전반에 걸친 총체적 한반도의 남·북한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미진하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이다. 이는 첫째로 ‘한반도 특수성’에 기인한다. 냉전의 시작과 함께 한반도에서 두 개의 분단국가가 등장하고 양 정부 모두 각각 내부적인 문제의 해결에 역점을 두면서 체제역량의 증대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려는 양상을 띠면서 단절된 냉전관계를 유지했다. 남북한의 냉전대결은 대외적으로 국제냉전논리의 양상을 표방했으나 본질은 민족주의에 있었다.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지는 냉전구도와 분할점령의 규칙과는 상관없이 분단을 해방의 완전성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인식하였고, ‘단일’의 개념이 전통적으로 지배적이었던 한반도에 등장한 두 개의 정부는 시원적으로 ‘정통성’의 문제를 안고 출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냉전시기의 남북관계는 축어적으로 냉전과 동일한 시대성에서 세계사의 조류와 동질성을 가질 뿐, ‘한반도 특수성’으로 대표되는 내수문제는 주류 냉전쟁점에서 이탈된 개별 사안이었다.
다음으로 남한과 북한의 낮은 국가역량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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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 오해와 진실, 2006.09.22,플래닛미디어,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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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재. 2010.『푸에블로호 사건과 한미관계』.한국사회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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