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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탐방문 - 근현대사의 산증인 덕수궁

저작시기 2014.05 |등록일 2014.11.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덕수궁을 가기 전에
Ⅱ. 덕수궁을 탐방하며
Ⅲ. 덕수궁을 탐방하고 나서

본문내용

Ⅰ. 덕수궁을 가기 전에

나에게 덕수궁은 무척이나 친숙한 이름이다.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곳이며 서울에 있는 많은 궁궐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울에 있는 궁궐은 조선시대의 유물, 왕권시대의 유산 등 시대의 변혁에서 살아남지 못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발자취로 다가온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를 좋아했기에 역사 유적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한 나에게 이번 과제는 좋은 현장학습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덕수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고, 중·고등학교 때도 근현대사, 국사를 항상 배워왔지만 정작 덕수궁의 본래 명칭이 경운궁이라는 사실은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실 때 알게 되었다. 덕수궁을 가기 전에 내가 연상할 수 있는 내용은 덕수궁 돌담길, 데이트코스, 고궁, 조선시대, 덕수궁 석조전정도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대중문화탐사반을 하면서 덕수궁 석조전 서관 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날 뿐 그 후로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덕수궁에 탐방을 감으로써 어떤 곳인지 배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의 고궁’ 이라는 책을 읽고 갔다.

<중 략>

내 사진에서 보이듯이 중화문에서 중화전이 기둥사이로 온전히 보이는 것이 한국 고건축의 멋스러움을 한껏 보여주는 것 같았다. 중화전은 경복궁 근정전처럼 왕이 업무를 보는 곳이지만 이곳은 황궁이기 때문에 중화전 천정에 있는 동물은 황제를 뜻하는 용이었다. 고종이 근대화를 위해 나랏일을 보던 장소이지만 경복궁 근정전보다 작은 규모였기에 조선이라는 중국의 제후국에서 황국으로의 격이 높아졌음에도 아직 국력이 미치지 못해 작은 규모였던 점은 아쉬웠다. 사실 덕수궁의 대다수 건물들이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들이라고 한다. 1904년 있었던 덕수궁 대화재 때문이다. 덕수궁이 한창 황국의 위엄을 쌓아가던 시기에 화재로 인해 황궁이 모두 불타버린 사건은 고종에게 얼마나 허망했을지 그 슬픔이 나에게도 감정이입 되는 것 같았다.


참고 자료

최봉준(2000), 한국 근현대사가 숨쉬는 곳, 덕수궁(경운궁), pp.29∼32, 한국역사연구회회보 제41호.
신영훈(2005), 한국의 고궁, pp.312∼363, 도서출판한옥문화.
안창모(2010), 덕수궁 - 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을 서다, 동녘.
한소영, 조경진(2010), 덕수궁(경운궁)의 혼재된 장소성에 관한 연구(대한제국시기 이후를 중심으로), pp.45∼56,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8권2호.
이윤상(2010), 황제의 궁궐 경운궁, pp.1∼24, 서울학연구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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