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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의 표해록연구

저작시기 2014.04 |등록일 2014.11.23 | 최종수정일 2015.09.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2,800원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최부의 생애
3. 《표해록(漂海錄)》의 제작 경위
4. 《표해록(漂海錄)》이 성격
5. 《표해록(漂海錄)》 속 표류기
6. 나가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표해록(漂海錄)》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된 과정과 상륙 후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는 중에 보고 느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분량 면으로 보면 해상 표류기는 내륙 견문기의 대략 삼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의도에 따라 해상 표류기에 비중을 두어 ‘해양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혹은 내륙 견문기로 분류되어 ‘연행록’이나 ‘중국견문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비록 양은 적으나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을 해양문학으로 분류하여 해상 표류기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최부의 생애와 《표해록(漂海錄)》의 보편적인 성격을 본 후에 표류기를 상세히 보고자 한다.

2. 최부의 생애
1454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최부(崔溥)는 조선 중기 삼림으르 대표했던 유학자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추종하는 문인이었다. 자는 연연(淵淵)이며 호는 금남(錦南)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진사 택(澤)의 아들로 1477년(성종 8년)에 24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482년에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홍문관 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전적(典籍)으로 있을 때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하였다. 1486년에 문과중시에 응시하여 아원으로 급제하고, 사헌부감찰, 홍문관 부수찬을 거쳐 수찬으로 승진하고 1487년에 부교리가 되었다. 1487년, 죄 지은 자들이 제주로 달아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잡기 위해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가 다음해 부친상으로 귀향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 태주만으로 표류하게 되었다. 16일 동안 해류를 따라 떠내려가다가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부(寧波府)에 표착하였고 중국 해적을 만나 위험에 처했지만 탈출하여 중국 닝보(寧波) 해안에 상륙하였다. 처음에는 왜구로 오해를 받아 매를 맞는 등 심한 고문에 시달리기도 하였으나 조선의 재직 중인 사대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륙 대운하를 따라 북경으로 호송되었다. 그리고 명나라 황제 홍치제를 알현하였다.

참고 자료

김미선, 《최부 『표해록』의 기행문학적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2006.
정설화, 《최부 『표해록』에 나타난 15세기 유자의 모습》, 명지대학교, 2009.
최부, 《(註解)표해록》, 박이정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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