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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의 유동성선호이론

저작시기 2014.08 |등록일 2014.11.16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 대공황

Ⅱ. 본론
1. 유동성 선호이론
2. 유동성 함정 -미국과 일본의 유동성 함정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케인즈의 유동성 선호이론의 개념을 말하기에 앞서 유동성 선호이론이 나타나게 된 배경인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해서 먼저 말하려고 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있기 전의 미국은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많은 해외자본들을 축적했고, 이어서 무역에서 역시 계속해서 흑자를 남기는 등 활발한 경제를 보였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안정적인 물가와 호황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식시장은 점차 과열되는 조짐을 보였고 1921년부터 1929년 까지 주가가 4배 이상 올랐었다. 과열된 주식시장을 해결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28년과 1929년 에 걸쳐 이자율을 인상했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주식시장 과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이자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가가 상승하면서 1929년 9월 미국의 주식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후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더니 그 해의 9월부터 11월까지 주가가 33%가량 대폭 하락했다. 자세히는 1929년 10월 24일, 29일 두 날에 걸쳐 미국의 주식이 대대적으로 폭락을 하면서 미국의 경제가 휘청거렸고 긴 대공황의 시작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의 그림에서 1932년 7월 즈음에 최저치를 달성했고 이는 1929년 9월의 최고치에서 90%가량 하락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시작된 대공황은 아래의 그림에서와 같이 1930년대부터 약 10년간 지속되었다. 그림에서 보면 음영부분이 대공황을 겪은 시기인데 이때의
미국 GDP와 실업률을 보면, GDP는 현저히 하락한 가운데 실업률은 상당히 높이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미국의 대공황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었고 대규모 실업과 빈곤을 낳은 대공황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침으로 대규모 토목공사와 같은 강제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뉴딜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이 역시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었다. 이 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었고, 미국은 2차 대전으로 인해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이재율, 「1930년대 대공황과 케인즈의 경제사상」, 계명대학교산업경영연구소, 2010
조 순 외 3명, 『경제학원론』, 율곡출판사, 2012
최형진,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관한 일 연구」, 영남대학교, 2002
송원근, 「케인즈식 재정정책의 유혹」, 한국경제연구소, 2013
전송수, 「유동성 함정은 왜 발생할까」, 한국경제연구소, 2011
박준규, 「마이너스 금리 국채 발행 의미와 시사점」, 보험연구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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