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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당 현채의 계몽사서에 대한 검토

저작시기 2014.11 |등록일 2014.11.14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玄采의 생애와 著ㆍ譯 활동

Ⅲ. 玄采의 啓蒙史書에 대한 검토
1. 東國史略
2. 萬國史記
3. 大韓地誌
4. 淸國戊戌政變記
5. 越南亡國史

Ⅳ. 玄采 啓蒙史書의 한계점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9세기 후반 개항 이래 우리나라는 대내적으로 봉건적인 사회체제를 개혁하여 近代化를 이루고 대외적으로는 帝國主義에 맞서 국권을 수호해야 하는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이에 다양한 대응논리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近代的인 歷史意識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의미 때문에 소위 開化期라 부르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연구의 한 小考로 전 시간에 「開化期 國史敎科書의 敍述과 歷史認識」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역사인식에 있어서 개화기교과서 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飜譯史書에 대한 검토가 보충되어야 함을 절감하였다.
이에 본고는 개화기 飜譯史學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玄采의 생애와 그의 愛國啓蒙史書들을 살펴봄으로써 개화기 역사 서술과 역사인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현채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1969년 이대사원 제 8집에 노수자가 「白堂 玄采 硏究」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논문은 현채의 家系ㆍ生涯ㆍ著述활동ㆍ思想 등을 자세히 서술하였고, 그의 저서들이 애국계몽운동에 기여하였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당시 현채 연구가 전무하던 시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최근 발표된 논문 중 비교적 정리가 잘 된 것으로는 1996년 인하사학 제 4집에 이동섭이 발표한「玄采의 愛國啓蒙史學에 관한 연구」가 있는데 이 논문은 현채의 사서들에 내재한 역사적 가치와 한계점을 논하였고, 1997년에 정은경이 서지학연구 제 14집에 발표한「開化期 玄采家의 著ㆍ譯述 및 發行書에 관한 硏究」는 현채가 관여한 서적들에 대한 주제별ㆍ연대별ㆍ발행소 및 인쇄소별 분석을 통하여 정리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이 세 논문을 바탕으로 현채의 생애와 그의 애국계몽사서들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Ⅱ. 玄采의 생애와 著ㆍ譯 활동

玄采의 자는 白受, 호는 白堂이며 본관은 川寧으로 중인출신인 父 齊萬과 母 鄭氏 사이에 2대 독자로 18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8세인 고종 10년(1873)에 譯科 漢學에 급제하였고, 21세되던 1876년 慶州崔氏와 혼인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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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細亞文化史, 韓國開化期敎科書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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