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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전쟁 레포트

저작시기 2011.06 |등록일 2014.11.12 | 최종수정일 2015.10.27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Round 1 :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
Round 2 : 고구려와 수나라의 2차 전쟁
Round 3 : 수나라의 2차 침공
Round 4 : 수양제의 4차 침공과 수나라의 패망


본문내용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은 598년 고구려 영양왕의 요서지방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영양왕은 말갈의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했으나 수나라의 영주총관 위충(韋沖)이 이를 격퇴시켰다. 수문제는 이 보고를 받고 대노하여 한왕 양(諒 : 수문제의 넷째아들)과 왕세적(王世績)을 행군원수로 삼아 수륙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도록 명령했다. 영양왕은 말갈병을 동원해 일단 수나라 침공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요서지방을 전략 기점으로 확보하고자 했다. 영양왕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은 수문제는 그야말로 대노하여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30만 대군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미 영양왕은 수나라 대군의 반격을 저지할 또 하나의 대비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중 략>

영양왕이 끝내 입조를 거부하자 수양제는 611년 2월에 고구려정벌을 공식 발표했다. 수양제의 고구려정벌 명령에 따라 전쟁동원준비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산동반도의 어느 조선소에서는 조선공들이 물 속에 들어가 배를 만드느라 썩어 들어간 살에 구더기가 생기는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612년 1월, 모든 정벌군과 군수물자가 북경 부근의 탁군에 모였다. 수양제는 군사와 장군들을 총집결시키고 임유각에 올라 출정식을 거행했다. 육군은 좌익 12군, 우익 12군, 총 24군으로 113만 3800명인데 과장하여 200만이라 하고, 군량미와 병장기 등 보급을 담당하는 부대 수는 그 두 배에 해당했다.

<중 략>

요동성의 끈질긴 저항과 별동부대의 전멸, 내호아가 이끄는 수군의 패배로 수양제는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고구려를 정벌하지 않으면 간신히 복속시킨 돌궐마저 배반할 우려가 있었다. 수양제는 새해가 밝자 제2차 고구려정벌의 조서를 발표했다. 전국의 병사들을 징집하고 군량미와 기타 군수품을 징발해 다시 탁군에 집합시켰다. 수양제는 이번에는 작전에 약간 변화를 주었다. 을지문덕에게 패한 우문술을 다시 기용해 별동대장으로 삼았다. 양제는 우문술 등에게 곧장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으로 직행해, 바다를 건너오는 내호아의 수군과 합세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장수들을 이끌고 예전처럼 요동으로 진격했다. 요동으로 진격한 양제는 여기서도 작전을 바꾸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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