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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덕수궁

저작시기 2011.04 |등록일 2014.11.0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창덕궁과 덕수궁의 자료 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면서
2. 역사
3. 배치
4. 정문
5. 정전
6. 편전
7. 침전
8. 마치며

본문내용

· 들어가면서.....
서울에는 다섯 개의 궁이 있다. 그 중 나의 관심이 가장 끌리는 곳은 덕수궁이다. 덕수궁은 한국 전통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고 조선 왕조 600년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무언가 모를 사연이 숨어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래서 나는 창덕궁과 비교할 궁으로 덕수궁을 선정했다. 먼저, 각 궁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두 궁들의 양식과 규모 등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 역사
창덕궁[昌德宮]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주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쓰게된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70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운궁[慶運宮]
그래도 지켜낸 궁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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