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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변법과 학술사상의 상관관계 제자백가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31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1. 春秋戰國時代의 대두와 社會特徵

2. 春秋戰國時代 學術思想

3. 社會特徵과 學術思想의 상관관계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春秋戰國時代의 대두와 社會特徵

중국의 고대왕조인 주(周)왕조(기원전 1046∼기원전 771)는 제6대 공왕(共王)(기원전 947~기원전 935)무렵부터 대외적인 진출이 전면적으로 정지되었고, 그와 동시에 제후나 귀족들이 왕권을 무시하는 행위가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경향이 가장 극에 달했던 것은 기원전 841년 제10대 려왕(厲王)(?~기원전 841)대인데 왕이 귀족과 민중들에 의해서 도읍에서 쫓겨나게 되고 만다. 이는 주왕권의 쇠퇴가 왕의 추방이라는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려왕은 망명처인 체에서 죽고, 그의 아들인 선왕(宣王)(기원전 827~기원전 782)이 왕위에 올라 주초의 정치를 부흥시키고자 했으나 이미 대외 군사적으로도 제후 통제 상에 있어서도 실정이 계속 이어져 왕권의 후퇴가 계속되었다. 선왕의 뒤를 이은 유왕(幽王)(기원전 781~기원전 771)이 기원전 771년, 서방의 견융(犬戎) 등의 이민족과 일부 제후의 공격으로 의해 피살되자 그 뒤를 이은 평왕(平王)(기원전 770~기원전 720)도 도읍을 버리고 동방의 낙양(洛陽)으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유왕의 패사는 ‘포사(褒姒)의 전설’을 통해 주왕이 이미 제후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던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주(周)나라가 견융의 난을 피해서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진(秦)이 전국을 통일한 때까지를 동주(東周)(기원전 770~기원전 221)라 칭하는데, 이는 기원전 453년을 기점으로 둘로 나뉘어져서 앞 시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 기원전 770~453), 뒷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53~221)라 한다. 각 시대의 명칭의 기원은 춘추『전국책(戰國策)』에서는 공자(孔子)의 저서인 『춘추(春秋)』에서, 전국은 유세지사의 담론을 모은데서 비롯되었다.

참고 자료

강길중, 박종현, 정재훈 저 「중국역사의 이해」경상대학교 출판부(2009)
이성구 지음, 「춘추 전국시대의 국가와 사회」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연구실
홍문숙, 홍정숙, 『중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 청아출판사(2013)
商鞅 지음 김영식 옮김 , 『商君書』, 서울, (주)홍익출판사 (2000),
劉向 지음, 조상옥 옮김, 『戰國策』, 서울, 明文堂 (2000)
韓非 지음, 成東鎬 옮김, 『新譯 韓非子』, 서울, 홍신문화사 1995)
司馬遷 지음 丁範鎭 外 옮김, 『史記列傳 上』. 서울, 까치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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