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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대만, 대일 감정 차이

저작시기 2011.09 |등록일 2014.10.20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조선과 대만, 식민통치에 대해
역사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 저항력의 차이
일본에게서 같은 식민통치를 받은 한국과 대만, 대일감정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895~1910년대, 일제의 무력통치
2. 1920년대 내지연장주의와 문화통치
3. 1930년대 이후 황민화 정책
4. 대만의 역사공동체적 정체성
5. 같은 통치, 다른 저항ㅡ 조선 식민지민과 대만 식민지민의 차이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한국과 대만의 대일 감정 차이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여전히 한일전에 전국민적인 관심이 쏟아지며,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된 지 오래다. 반면 대만은 총독부 건물이 여전히 중화민국 총통부 청사로 계속 사용되고 있고, 일본어는 물론 일본의 대중문화도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가장 선두에 선 국가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만의 높은 경제 성장을 일본 식민지배 시기의 근대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특히 역사 교과서에서 보여지듯 식민지 근대화론보다는 식민지 수탈론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지시기 근대화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은 지금까지도 일본에 대한 감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는 듯하다.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이렇게 큰 감정의 차이와 본질적으로는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들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시기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할 것인가. 이러한 차이는 일본인들이 대만을 성공한 식민지, 조선을 실패한 식민지라고 자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왜 이런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일까. 나는 한국과 대만의 대일감정이 실제 식민통치의 차이에 귀인하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Ⅱ. 본론
1. 1895~1910년대, 일제의 무력통치
(1)-1. 대만의 헌병경찰 통치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시모노세키 조약을 비준한 후, 청은 대만을 일본에게 할양해주어야 했다. 할양 소식에 분노한 대민 관민들은 5월 23일 대만민주국을 건설하여 대남(臺南)지역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지속한다. 그러나 대만민주국의 총통이 황망하게 중국 본토로 피신하면서 대만민주국은 일본이 군사작전을 시작한지 5개월여 만에 와해되고 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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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봉, 식민지권력의 두가지 얼굴, 역사와 경계 51쪽
손준식, 『동화와 개화의 상흔』, 중국근현대사연구
손준식, 『일제 하 대만의식의 형성배경과 그 성격』, 중앙사론 3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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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昭堂,『대만총독부』(臺北,前衛出版社,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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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秀政外著, 『臺灣史』(臺北, 五南圖書出版, 2002)
陳昭瑛,『論臺灣的本土化運動:一個文化史的考察』 『中外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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