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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소련 공산체제의 위기와 동유럽 공산체제의 붕괴

저작시기 2014.06 |등록일 2014.10.18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900원

목차

1. 흐루시초프와 처녀지 개간 사업
(1) 개괄
(2) 흐루시초프의 ‘7개년 계획’

2. 브레즈네프 시대(1964~1982)
(1) 브레즈네프의 등장 배경과 당시의 문화 정책
(2) 브레즈네프의 외교 정책
(3) 브레즈네프의 경제 정책
(4) 브레즈네프 시대의 말기

3. 고르바초프와 소련연방의 해체(1985~1991)
(1) 글라스노스트
(2) 페르스트로이카
(3) 소련의 해체

4. 동구권 공산체제의 붕괴

5. 정리

본문내용

1985년 3월 11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취임하게 된다.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란 정책을 두 축으로 소련의 개혁을 시도한 그는, 역설적으로 소련의 해체와 공산권의 몰락을 야기하게 된다. 이 역설적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선, 적어도 그 전에 있었던 중요한 서기장, ‘흐루시초프’ 시대의 ‘처녀 개간지 운동’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역사에 있어 만성화된 정책 실패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줄 것이다. 또한 연방의 해체는 서방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미숙했던 점에 기인, 다시 말해 경제적 측면의 요소가 크므로 경제사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는 것으로 한다. 동독을 비롯한 동구권의 몰락은 소련 연방의 부침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소련 경제사의 서술 후 살펴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1. 흐루시초프와 처녀지 개간 사업

(1) 개괄

‘브레쥬네프’가 소련의 제5대 서기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 서기장 ‘흐루시초프’의 군사교리 수정과 농업정책 실패에 기인한다. 50년대 이후, 소련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군비 경쟁은 점차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흐루시초프는 재래식 무기의 확충보다는, 핵무기와 ICBM 등의 전략무기 확충을 통해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 했는데, 이는 소련 군부의 반발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7개년계획’ 하의 ‘처녀지 개간 사업’의 실패가 결정적인데, 이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한다.

위 표는 7개년계획의 실제 농업생산량을 보여준다. 계획대로라면 1958년의 ‘100’에서 1965년의 ‘170’, 즉 70% 상승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14’, 다시 말해 14% 상승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산당 정책 집행에 있어 주먹구구 적이며, 성과 달성을 위해서 통계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등의 총체적인 실패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흐루시초프의 ‘처녀지 개간 사업’의 의도란, 1200만 헥타르에 달하는 북부 카자흐스탄, 서시베리아, 북캅카스, 우랄 지역을 개간한다면, 미국의 농업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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