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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집의 역사, 식민지시대의 집, 해방후의 집의 모습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13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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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 기
1)시대적 배경
2) 새로운 양식의 등장

2. 식민지 시대
1) 토막(土幕)
2) 문화 주택
3) 개량한옥
4) 영단 주택
5) 아파트

3. 광복 후
1) 해방촌
2) 벌집촌
3) 광주대단지 사건
4) 한국 전쟁 이후

4. 새마을 운동과 농촌의 변화
1) 새마을 운동
2) 새마을 운동이 농촌에 준 영향

5. 아파트
1) 도입과 정착
2) 아파트의 영향
3) 주상 복합
4) 타워 팰리스

본문내용

1. 개항 기
1) 시대적 배경
여기서 개항기는 강화 조약으로 개국, 개항한 1876년부터 1910년 국권 상실 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시기의 우리 도시 사회는 개항장, 개시장을 중심으로 크게 변화해 갔다. 동양 3국중 제일 먼저 1842년에 개항, 개시한 중국 각지에는 80개의 개항장 개시장이 있었으며, 상해 등지에는 외국인 전용 거주 구역인 조계가 설정되었다. 1859년에 개항한 일본에도 요코하마 등에 외국인 거류지가 설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개항장은 바로 일본이 서구 각국에서 배운 수법을 역수출하여 생겼는데 연대순으로 보면 1876년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 한성 용산 목포 군산 마산 평양 의주 용암포 청진으로 1908년 년 까지 개항장과 개시장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때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일본인들만이 사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일본인 거류지라 하였다. 일본인들은 개항장뿐만 아니라 서울의 충무로, 용산, 진고개 등에도 일본인촌을 형성했다. 또한 대한제국 말기에는 서양인들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이주해오게 되면서 역시 개항장에 소위 ‘양옥’이라는 서양식 주택들을 짓기 시작하였다. 당시 지어진 이러한 서양식 주택으로는 한국 최초의 양풍주택으로 알려진 1884년 지어진 인천의 독일인 숙소 세창양행 사택을 비롯하여 많은 외국인 부호, 외교관, 상인들의 주택이 있다. 개항장에는 이러한 양식 주택과 함께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일본식과 양식이 절충된 주택, 일본식 주택, 한옥과 일본식이 절충된 주택등 갖가지 양식의 주택들이 속속 지어져 매우 복잡한 경관을 형성하였다.
또한 기독교 등 서양의 종교가 들어오면서 대구, 청주, 광주 등의 지방 소도시에는 종교건축물과 함께 선교사들의 거주를 위한 주택도 서양식으로 지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주택에는 인천의 알렌 별장(1893),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1890), 대구 동산동의 선교사 주택, 청주 양관1호 등이 있다.
개항장과 개시장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각기 자기 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함께 가지고 들어왔으나 그들의 무역선과 정기선이 드나들면서 새로운 항로가 개척 되었고, 전화, 철도, 자전거와 인력거 등 지역 질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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