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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개항이후의 매춘의 역사, 미군기지 매춘, 매춘의 종류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13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200원

목차

1. 개항이후 창기와 유곽

2. 일본인 거류지 매춘업 (유곽)

3. 일 제강점기의 매춘
1) 공창제도
2) 미군정시대의 매춘
3) 기지촌
5) 박정희시대

4. 성매매특별법

본문내용

1. 개항이후 창기와 유곽
개항과 더불어 정치경제적으로 사회변화가 일어나고 게다가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후가 되면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농가경제, 가족해체가 이루어지면서 여성유동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갑오개혁에서 법적으로 공사노비제를 폐지하고 인신매매를 엄금하게 하였다. 그러나 사회현실은 이전보다 더 혼란하고 사회경제적 붕괴가 가속되었다. 신분 해방 후 사회적 새 질서가 자리 잡지 못한 채 전쟁과 어려운 사회 속에서 인신매매가 난무하고 일반 여성들의 매춘업 유입이 많아졌다. 과거 신분적인 강제로 이 계층이 만들어졌던 것에 비해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근대적 관계의 외피를 쓰고 매춘여성과 그 관련업들이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부모나 남편에 의해 혹은 매춘관련업자들에 의해 인신매매 당해 매춘의 길에 접어든 여성들도 크게 늘어났다. 인신매매업자 혹은 매춘 중개업자로서 뚜쟁이, 노구장이라는 층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대궐의 하급 관인들의 인척자들로 구성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첩이 남편의 허락 하에 혹은 비밀리에 매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시 대궐 연회에 기생을 동원했는데, 나라 형편상 기생 동원과 조직을 목적으로 한 협률사가 1902년 조직되었다. 당시 기생과 삼패의 경계는 엄연하였지만 경우에 따라 삼패도 기생이 되거나 대궐 행사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이것이 조선말기적 현상인지 조선시대 일반적인 현상인지 확실치 않으나 이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분명한 것은 기생의 특권이 서서히 폐지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을사조약 이후가 되면 기생과 삼패의 구분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기생과 삼패(창기)의 지역 분포와 나이
기생과 삼패의 지역적 분포는 그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특히 한말은 이들의 거주지가 바로 영업지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삼패는 남부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고 창기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삼패가 있던 지역은 일본인 거류지가 있던 남부에 많이 있었지만 집단화된 일본 거류지와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기생들도 남부지역이 많고 서부ㆍ중부 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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