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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집의 역사적 정의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13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① 조선시대 주택의 시대적 흐름
②조선시대 집의 특성
③조선시대 집의 분류
④조선시대 정원, 별장

본문내용

① 조선시대 주택의 시대적 흐름
유교는 조선시대에 나라의 정책적 종교였다. 그래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유교는 중국의 성리학적 체계에 따라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모든 만물이 하나의 체계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터득하는 원리이다. 이 원리를 인간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삼강오륜을 삶의 기본개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유교의 원리에 따라 남자중심의 가부장제도가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의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고려조적인 불교사회가 유교사회로 대체되는 과도기는 15세기이다.
고려조적인 성격을 밑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조선 왕조는 정책적으로 숭유억불정책을 강력히 실시하였다. 그리고 숭유억불정책이 자리를 잡아 감에 따라 주택 내에 가묘를 두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주거공간 내에 산사람과 죽은 사람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이 가묘제가 점차 일반화되어 중인계급 이상에서는 별도로 사당을 건축하고 신위를 모시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집의 제일 높은 곳에 조상을 위한 사당채를 두었는데 간혹 누마루를 둔 정자를 집안에 둔 경우도 있었다. 주자가례대로 관혼상제가 향촌사회에 일반화되고 사당을 둔다거나 남녀의 엄격한 질서가 나타나는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이 시기의 집들은 채로 동을 분리하고 각 채는 방과 마루를 둔 칸으로 나뉘어 각각 마당을 두고 독립된 생활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조선 중기는 성리학이 우리 사회에 완전히 정착된 시기로 가정 안에서 남자들의 역할이 커져 사랑채가 확대되고 권위적인 장식요소를 두기도 하는 등의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양반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상업자본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부농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까지 가졌던 양반에 대한 반감으로, 과시적이고 장식적이지만 실용적인 주거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민가의 주택구조는 방의 연결 상태에 따라 각 방들이 한 줄로 연결된 외통집과 두 줄로 배치된 양통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민가의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으로, 오랜 동안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진 집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조선말 개항과 더불어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개량한옥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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