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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후의 매춘 역사의 의의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08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1) 식민지 시대
2) 공창제도

2. 미 군정기의 매춘
1) 기지촌
2) 양공주

3. 산업화.도시화 (박정희 시대)
1) 기생관광

4. 오늘날 한국의 매춘
1) 전통형
2) 산업형
3) 개인형

5. 성매매 특별법 및 성노동자 연대
1) 성매매특별법
2) 전국성노동자연대
3) 성매매특별법 찬성과 반대

본문내용

1.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개항이후

매춘을 전업으로 하는 창기(娼妓)가 생겨난 것은 1876년 개항 이후이다.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인 창기들이 뒤따라 들어왔고, 일인 도래자가 격증함에 따라 매춘업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몇몇 창기를 고용하여, 성교를 희망하는 남성들에게 방과 창기를 함께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대좌부영업과 특별요리점의 형태로 매춘을 묵인했다. 또한 대좌부영업이 주택지에 산재하게 되자, ‘시내풍기의 유지’, ‘성병예방’ 이라는 이유로 이들 창기들의 집단 거주지인 유곽(遊廓)을 만들었다.

식민지 시대

한국에서 매매춘 현상을 구조화시킨 결정적 계기는 일본 식민지 시대라고 볼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매매춘 행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기생과 갈보라고 불리던 유녀가 있었으나 이들의 행위는 관기들의 겸업업종이었고, 공식적으로 이들의 매매춘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매매춘 행위가 대중화 혹은 보편화 단계에 이르지 않았었다. 매매춘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공창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부터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를 들여와서 식민지 종주극으로 문화적 우월성과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이나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위해 이러한 공창제도가 필요했다.

공창제도

공창제도란, 관의 허가를 받고 매음 행위를 업으로 하는 공창을 인정하는 제도 이다.
매매춘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공창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부터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를 들여와서 식민지 종주극으로 문화적 우월성과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이나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위해 이러한 공창제도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1904년 일본 공사관 산하 <경성영사관령 제3호> 에 의해 ‘불특정 다수인들을 상대로 성교를 하고 그 대가를 지불받는 직업’ 즉 전문직업인으로 매춘녀인 창기와 창녀가 사회적으로 공인되었다. 그러나 일본내 공창이 특정지역(유곽)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전국적으로 확대되도록 방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매매춘 현상을 만연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선인 매춘녀에 대한 성병검사도 실시하였는데 이는 성적 도구의 ‘안전성’을 확보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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