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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집의 역사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08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조선시대 집의형성

가. 가사규제
나. 풍수지리설 음양오행설
다. 숭유배불정책
라. 내외법

2. 조선시대 집의 특징
가. 양반의집
나. 평민의 집
다. 정원과 화장실

본문내용

1. 조선시대 집의형성

가. 가사규제
조선시대에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집의 규모를 제한한 제도로 가사제(家舍制)라고도 한다. 1431년(세종 13) 제정한 것으로 양반의 주택인 상류 주택 ,중인과 이서 ,군교를 포괄하는 계급의 중류주택, 그리고 양인의 서민주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가대(家垈=집터와 그에 딸린 논밭이나 산림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크기와 집의 간수(칸수), 장식의 제한을 나라에서 계급별로 한정함으로써 강한 가사규제를 받아왔다.

<표1 조선시대 계급별 가사규제>

나. 풍수지리설 음양오행설
음양오행설은 음양설과 오행설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음양설은 천지간의 사물을 음과 양으로 대별하여 이들이 서로 순환, 조화하여 우주와 인생의 생성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이고, 오행설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다섯가지 기본요소에 의해 서로 상생(相生)하거나 상극(相剋)하여 구체화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음양오행설이 뒷받침이 되어 발달한 것이 풍수지리설인데, 풍수지리설은 소박한 지모적신앙(地母的信仰)과 음양오행설이 결부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지하의 생기(生氣)가 순환하는 통로가 지맥(地脈)이고 생기가 집중되는 곳이 혈(穴)인데 이곳에 묘자리나 택지를 정하면 이 생기를 받아들여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에는 마을의 입지에서부터 집의 좌향(坐向), 심지어는 문(門), 방(房), 주(廚), 측(廁)을 주택의 사주(四柱)라 하여 각 방의 위치까지도 풍수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다.

다. 숭유배불정책
조선은 유교가 민간신앙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사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고 대가족제를 이루었다. 대가족제도는 하나의 주택속에서 여러 대가 모여살게 되었고, 특히 대가(大家)에서는 3대 또는 4대에 이르는 여러 식구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주택건축은 큰사랑 ,작은사랑 ,안채, 아랫채 ,별당 등 여러 채의 건물들이 지어져 하나의 커다란 저택을 이루었다.

참고 자료

<<우리 옛집 이야기, 박영순 외, 열화당>>
<<한국의 전통민가, 주남철, 대우학술총서>
<<한옥의 공간문화, 한옥공간연구회>>
<<한국의 전통민가, 대우학술총서>>
<<한옥의 공간문화, 한옥공간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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