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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와 자화상

저작시기 2011.04 |등록일 2014.10.07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공재 윤두서에 대해

2. 윤두서의 자화상, 왜 유명할까?
① 국보 240호
② 파격적인 정면 구도
③ 세밀한 묘사력과 깊이
④ 극단적인 좌우 대칭
⑤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그림

3. 윤두서의 그 외 작품
① 짚신 삼기
② 군마도
③ 유하백마도
④ 나물캐기
⑤ 선차도

4. 그 외 조선시대 자화상 감상

본문내용

1. 공재 윤두서에 대해

본관은 해남이고 호는 공재(恭齋)이다.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지만 인물화와 말 그림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묘사를 하였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현재 그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자화상 <윤두서상>이 있다. 겸재정선, 현재심사정과 더불어 조선의 3재로 불리었다.
그는 젊어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서생활로 일생을 보냈으며 죽은 뒤 가선대부·호조참판이 추증되었다. 그는 시·서·화에 두루 능했음은 물론 유학과 경제·지리·의학·음악 등 여러 방면에 박학을 추구하던 학자이기도 하였다. 15세에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으나 그가 22세 때 부인이 사망했다. 그의 셋째형은 당쟁에 휘말려 귀양지에서 사망하였고 큰형과 함께 모함을 받아 고생을 하였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윤두서는 벼슬길에 나아갈 뜻을 버리게 된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잠(李潛-성호 이익의 형)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맞아죽는 일까지 생기자 그는 더욱 침잠하게 되었다. 윤두서가 46세가 되던 1713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해남으로 이주하였다가 2년 후 사망하였다.

화가로서는 특히 인물화와 말을 잘 그렸는데, 산수화를 비롯한 일반 회화작품은 대체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한 전통성이 강한 화풍을 보인다. 그러나 인물화와 말 그림은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으로 정확한 묘사를 하였으며,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현재 그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을 들 수 있다. 그가 남긴 작품 중《나물 캐는 아낙네》, 《밭가는 농부》, 《짚신 삼는 사람》은 모두 하층민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서민풍속화로 평가할 수 있으며 조선 회화상의 전통적인 화풍과 더불어 조선 후기를 예시하는 새로운 화풍을 펼쳤다. 그가 물려받은 전통은 17세기에 유행한 절파화풍의 산수인물화이고, 새롭게 구현한 화풍은 화보를 통해서 익힌 남종화풍, 그리고 자화상에서 보여준 사실적 화풍 등이다.

참고 자료

한국의 풍속화 / 2001 / 정병모 지음 / 한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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