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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한국교회의 구약성서 해석사 - 초창기(1780년대-1920년대), 논쟁의 시대(1930년대-1950년대), 사회적 반응의 시대(1960년대-1990년대), 현재의 상황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06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50원 (30%↓)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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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창기 (1780년대-1920년대)
2. 논쟁의 시대 (1930년대-1950년대)
3. 사회적 반응의 시대 (1960년대-1990년대)
4. 현재의 상황(2000년대-현재)

본문내용

1. 초창기 (1780년대-1920년대)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하기 100여 년 전에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이 한반도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가톨릭교회는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지만, 성서를 번역하지 않았다. 구약성서가 완역되어 신약성서와 함께 출판된 것은 1911년이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인 조사들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완역했던 것이다. 초창기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장로교와 감리교에서 파송을 받았다. 그들의 신학적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한국교회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되었던 한 의료선교사는 1960년대에 한국교회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국인들은 신학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그들은 보수적, 더 보수적,
가장 보수적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 가톨릭 사제들은 개신교 선교사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에게 있다.”

한국 개신교가 보수적인 것은 선교사들의 영향이 크다. 특히 한국교회의 70%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의 초기 선교사들은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인 깔뱅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학교육을 받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약성서는 신약성서와 함께 과학과 역사를 포함한 모든 지식의 자료집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 정확무오하며 문자적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고등비평이라 불리는 역사비평을 거부하고, 유교의 선비들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성서를 읽고 그 권위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러한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분위기에서 양주삼은 역사비평을 반영하는 오경연구를 제시하면서 모세 저작권을 부인했는데, 이는 선교사들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했다.
한국 개신교 초기 구약성서 해석의 문제는 이와 같이 역사비평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데, 이는 미국교회가 경험한 갈등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역사비평의 거부자들은 이의 수용자들을 구약성서의 권위와 진리를 파괴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갈등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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