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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주거

저작시기 2014.10 |등록일 2014.10.05 | 최종수정일 2014.10.22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조선시대집의 특징
1) 신분제도와 가사규제
2) 숭유억불청책
3)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사상

2. 계층별집의 특징
1) 서민주택
2) 중류주택
3) 상류주택

3. 화장실

4. 부엌

5. 조선시대 정원의 특징(소쇄원)

본문내용

1. 조선시대 집의 특징
가. 신분제도와 가사규제
양반의 주택인 상류 주택 ,중인과 이서 ,군교를 포괄하는 계급의 중류주택, 그리고 양인의 서민주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가대(家垈=집터와 그에 딸린 논밭이나 산림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크기와 집의 간수(칸수), 장식의 제한을 나라에서 계급별로 한정함으로써 강한 가사규제를 받아왔다.
(1) 가대의제한- 개국과 더불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양의 땅이 한정되어 있었으나 나누어 줄 집터(家垈)는 많아 장지화등이 나라에 상소하여 정일품 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각 계급에 집터를 한정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법의 제정 이후에도 특수층에서는 법에 정한 크기를 넘게 지은 사례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2) 간수제한- 세종13년 주택의 실질적인 규모를 규제하는 간수의 제한을 정하였고, 그후 이규재가 법전에 등재되었다. 계급별로 간수를 제정하였으나, 이 또한 특수층에서 위반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또한 기둥 사이의 길이가 일정하게 정해진바 없었기 때문에, 간수의 제한만으로는 가사규제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3) 장식제한- 주택을 치장하는 데 단청(=(궁궐․사찰․정자 따위)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일, 또는 그 그림이나 무늬.)을 금한 것은 세종 11년에 처음이다.처음에는 궁궐 이외의 건축 모두에 단청을 금하였으나 문종때에는 관부와 사찰에는 색을 입히는 것은 허용하였다. 또한 공포와 다듬은 돌인 숙석(= 인공으로 다듬은 돌)도 금하였지만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았고 특히 서울에 그 사례들이 많이 남아있다.

나. 숭유억불청책
조선은 유교가 민간신앙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사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고 대가족제를 이루었다. 대가족제도는 하나의 주택속에서 여러 대가 모여살게 되었고, 특히 대가(大家)에서는 3대 또는 4대에 이르는 여러 식구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주택건축은 큰사랑 ,작은사랑 ,안채 ,아랫채 ,별당 등 여러 채의 건물들이 지어져 하나의 커다란 저택을 이루었다.

참고 자료

<<우리 옛집 이야기, 박영순 외, 열화당,59~74>>
<<한국의 전통민가, 주남철, 대우학술총서,68쪽>
<<한옥의 공간문화, 한옥공간연구회, 35쪽>>
<<한국의 전통민가, 대우학술총서,70쪽>>
<<한옥의 공간문화, 한옥공간 연구회,16쪽 한옥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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