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진보적 민족주의를 이끈 독립투사 여운형

저작시기 2013.08 |등록일 2014.09.25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여운형의 성장과정
1) 여운형 성장환경
2) 최초의 근대식 교육

Ⅲ. 여운형의 주요활동
1) 독립운동가로의 변전
2) 해방 후 활동
3) 좌우합작운동과 여운형의 암살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여운형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조선의 청년들과 민족 스스로의 독립에 대하여 역설하였던 사람이다. 이를 위하여 그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민족의 힘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였고, 좌우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양자를 아우르며 끊임없이 민족의 진로를 제시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형이 활동했던 당시와 그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동안은 철저한 흑백논리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었기에 미국과 소련 즉 우파와 좌파 그 어느 쪽에 치우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친일의 편에 서지도 않았던 여운형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끝내 그의 최후는 좌우 모두가 적대시 하는 와중에 암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여느 독립투사 못지않은 업적을 두고 여운형에 대한 평가는 가지각색이다. 어느 측의 주장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판가름하기에 앞서, 어느 것이 진짜 여운형의 행보였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운형은 지난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실로 그가 사망한지 60여년 만에 이룬 쾌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나는 아직까지도 여러 논란 속에서 그 자취까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는 여운형을 재조명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함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사상적 편견을 배제한 채 오로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다 하였던 독립투사 여운형에 대하여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여운형의 성장과정
1) 여운형 성장환경
1886년 5월 25일 여운형은 경기도 양평에 대대로 소론파에 속하는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태양을 치마폭에 감싸는 꿈을 꾸었다는 며느리에 말에 조부는 손자의 호를 몽양(夢陽)이라 지었다. 그의 아버지는 양반가의 사람답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만큼은 진취적이고 사리분별이 명확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는 내내 휘하의 여러 동료들과 조선의 백성들에게 때로는 매서운 호랑이처럼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대하던 그의 성격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참고 자료

이기형『여운형 평전』 실천문학사, 2004
여연구『나의 아버지 여운형』 김영사, 2004
정병준 『몽양 여운형 평전』 한울, 1995
몽양 여운형선생 추모사업협회 ․ 몽양연구소 『여운형 노트』 학민사, 1994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http://www.mongyang.org/)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