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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방 10월 항쟁의 전개과정과 성격

저작시기 2013.08 |등록일 2014.09.25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머리말
2. 해방직후 전남지방의 동향
3. 전남지방 10월 항쟁의 전개과정
4. 전남지방 10월 항쟁의 성격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8월 15일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된 우리민족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해방의 기쁨과 환희만이 있지 않았다. 해방정국에서 우리민족은 서로의 이념에 따라 갈등이 생기며 새로운 국가수립, 친일파 처단문제 등 커다한 해결과제를 안고 있었다. 여기에 변혁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 좌익세력과 새로이 등장한 미군정간에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였다. 새로운 국가 형태의 수립을 놓고 좌익세력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자 하였고 각 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설치하여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미군정을 실시하였고, 인공을 부인하고 탄압하였다.

<중 략>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와 인민위원회는 전남지방을 장악하고 일부에서는 적산관리, 세금징수, 학교운영 등 전남지방의 실질적인 행정·자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전남지방의 건준의 조직은 중앙에서의 지시보다는 도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전남건준은 중앙건준과 신국가 건설이라는 기본적인 성격을 같이하고 있었지만 중앙과 지방의 통상적인 상하행정조직관계와는 달리 상부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지방의 행정업무를 관장했다.
8월 15일 일본의 항복 방송을 전해들은 양심적 지방 인사들은 국기열의 집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근처 창평상회에서 건준 결성식을 개최하기로 하고 최홍종을 위원장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중 략>

전남지방에서 일어난 10월 항쟁의 특징은 첫째, 자연발생적인 소요가 아니라 중앙당의 지시에 의한 지방 당 조직의 계획 하에서 대규모적이고 체계적으로 항쟁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전남지방의 10월 항쟁은 중앙당의 지시에 의해 각 군당·면당의 조직선을 따라 리·부락단위의 세포조직을 통하여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내려왔으며 세포조직에 의해 대중동원이 이루어졌다.
시위의 구체적인 양상을 보면 전남지방의 봉기가 계속되는 동안 경상도나 전북지방에서는 단 한 건의 봉기도 없었다는 점이다. 경상도의 경우 10월 하순에는 봉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좌익이 강했던 전북지역에서 단 한 건의 봉기도 없었다는 것은 좌익세력이 자신들의 힘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해서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브루스 커밍스, 1986,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전남일보』 광주전남현대사 기획위원회, 1991, 『광주전남현대사 1』, 실천문학사
한국사연구회, 2008,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下』, 지식산업사
안종철, 1990,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지방조직과 지방인민위원회에 관한 연구 : 전남지방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학위논문
박찬승, 1998, 「1946년 전남지방 11월 봉기의 전개과정」, 아시아문화연구 Vol.2, 목포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정해구, 2011, 「해방 공간에서의 10월항쟁 : 그 의미와 평가」, 統一問題硏究 Vol.30, 영남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
함종호, 2011, 「10월 민중항쟁의 정치적 의의와 진상규명의 과제」, 統一問題硏究 Vol.30, 영남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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