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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앙과 신라왕권과의 관계

저작시기 2013.11 |등록일 2014.09.25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불교의 전래와 전통무교와의 갈등
1) 불교의 전래
2) 신라의 전통무교집단의 반발
2. 불교의 공인과 확산
1) 불교의 수용과 갈등 - 이차돈의 순교
2) 왕실의 후원과 무. 불의 융화
3. 불교신앙과 거대사찰창건
1) 왕실의 거대사찰건립
2) 불교신앙과 왕의 권위

Ⅲ.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늦게 전래된 신라의 불교수용과정과 토착화 과정은 고구려, 백제 두 나라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폐쇄된 신라의 위치적 특성과 더불어 토착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부족장들과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신라 내의 불교 공인이 늦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왕권강화를 위한 방책으로 불교수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한 신라는 삼국 중에서 호국불교적인 성격을 가장 짖게 띠는데 이는 북조의 영향을 받아 국가불교적인 성격이 바로 유입이 된 것과 주술적인 성격을 띠며 병을 치유하고 설법을 하는 방식을 띠던 무교적인 성격이 융화된 밀교의 영향이 불교를 전파하는데 영향을 미쳐서 일 것이다.

<중 략>

삼국 중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빠른 나라는 신라를 제외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이다. 이 두 나라는 개방되어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불교를 빨리 수용할 수 있었고, 또한 왕권의 중앙집권화가 이미 확립이 되어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삼국 중 가장 앞선 372년에 불교가 전래된 고구려는 전래된 지 3년만인 375년에, 384년에 불교가 전래된 백제는 그 다음해인 385년에 거대 사찰을 중건하여 불교가 국가적으로 수용됨과 동시에 공인되고 국가적으로 거대사찰을 중건하는 등 국가적으로 반발이나 갈등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중 략>

신라는 왕위계승체제가 김씨 왕조의 계승체제가 확립되어 안정되었다. 이에 연맹체제에서 국가체제로 전환하기위한 체제개혁이 이뤄지게 되는데, 지증왕이 즉위한 지 4년 동안 갈문왕의 호칭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국왕으로서의 칭호를 받기 시작하면서 순장폐지를 통해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으며, 국왕의 흥거 이후 시호를 내리는 시법시행을 통해 방언체제의 신라의 왕호를 체계적으로 확립하였다.
법흥왕은 부왕인 지증왕의 이러한 체제개혁을 계승하여 지속되는 병부설치를 통한 병권통일을 통해 군사력이 나뉘어 있어 취약해진 왕권의 강화와 신라의 군사적 전투력 상승을 이루었으며, 신라식 세계화를 꾀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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