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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산강유역‘옹관고분사회’의 변화과정

저작시기 2013.08 |등록일 2014.09.25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머리말
2. 영산강유역의 ‘옹관고분사회’ 성립과 발전
3.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의 해체
4. 백제의 진출과 고분의 변화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영산강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옹관고분들은 타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형태들의 고분들이 분포되어 있어 꾸준히 관심을 받아왔다. 이 글에서는 고대 영산강유역사회의 발전과 성장 그리고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문헌자료가 빈약한 관계로 영산강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옹관고분을 토대로 고고학적 지표를 적절히 이용하여 정리를 하겠다.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옹관고분과 정치 세력의 방어기능을 담당하는 성곽, 이것을 통하여 경제적 토대를 마련했을 평야를 관련지어 영산강유역에서만 보여지는 독특한 모습으로 이 지역의 고대사회의 특징으로 보고 영산강유역 고대사회를 ‘옹관고분사회’라 지칭하겠다. 이러한 옹관고분사회의 중심 세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영암 시종면 일대와 나주 반남면 일대의 유적 · 유물을 정리하면서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중 략>

‘옹관고분사회’의 중심지였던 시종면 일대는 3C~5C전반까지 영산강유역의 핵심이였다. 이후 5C중반 무렵부터 시종면 일대는 쇠퇴해가고 그 대신 나주 반남면 일대가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시종면이나 반남면 일대는 영산강의 지류인 삼포강을 따라 연접해 있어 결국 동일지역내의 위치의 변경으로 볼 수 있다. 반남면 일대는 시종면 일대와 마찬가지로 옹관고분이 밀집되어 있고 토성이 자리잡고 있어 유력한 정치 세력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반남면 지역은 90m의 높지 않은 자미산을 중심으로하여 주변부는 비교적 평평한 구릉평야를 형성하고 있었다. 삼포강은 반남평야를 둘러싸는 형태를 취하면서 남쪽의 시종면 방향으로 흘러 영산강의 본류와 합류한다. 자미산의 정상부에 대규모의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자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덕산리, 신촌리 고분군이 서쪽에는 대안리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반남고분군에서 보이는 옹관은 단옹식, 합개식이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U자형의 대형 전용옹을 쓰고 있고 시종면 일대의 고분과 비교시 형태도 발전된 모습이다. 이런 면을 볼 때 옹관고분사회의 무게중심은 시종에서 반남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대체로 5C중반 이후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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